박근혜가 한나라당 ‘비상대표’를 맡게 된다. 인생 최대의 승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박근혜 승부는 단순히 구당(救黨)에만 머물러선 안 될 것이다. 애당(愛黨)을 넘어 애국이 되려면 한국 정치에 대한 개혁을 선도해야 한다. 자신부터 구태(舊態)를 단절하고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천명해야 한다. 박근혜 판 6·29 선언이다.

물론 박근혜는 아직 대통령 후보가 아니다. 후보 경선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국민이 주시하는 ‘압도적 유력 주자’다. 많은 국민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박근혜가 다음의 네 가지를 공약하는 것은 어려울까.

첫째, ‘정권비리 감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지금처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대통령 측근이나 친인척을 감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력도 부족하고 청와대라는 게 같은 식구가 될 수 있다. 특단의 방법으로 잠재적 비리 요소를 통제할 특별기구나 조직이 있어야 한다. 특별검사 급의 독립적인 인물이 지휘하는 검찰 특별팀도 연구해볼 만하다.

둘째, 낙하산 인사의 줄을 끊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 초기 사실 ‘고소영’보다 심각한 게 낙하산 인사였다. 선거캠프에 손·발을 걸쳤던 이들이 정부·공기업과 정권 주변 지대에 낙하산 하강을 시작했다. 이런 모양을 보고 공무원 사회는 “아, 이 정권도 똑같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공무원은 움직이지 않는다. 낙하산에 무슨 공정과 경영효율이 있겠는가. 박근혜는 사조직과 낙하산의 폐지를 천명해야 한다. ‘논공행상 감투’는 없고 최소한의 유능한 인사만 중용할 거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대선캠프에 뛰어드는 이가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선거는 당의 공식조직을 이용할 거라고 공언하면 된다.

셋째, ‘박근혜 사람들’부터 물갈이해야 한다. 예스 맨(yes man)을 빼고 노 맨(no man)을 집어넣어야 한다. 박근혜 주변에는 2007년 경선 때 도왔고, 2008년 ‘학살’에서 살아났으며, 지난 4년간 변함없이 머문 이들이 있다. 박근혜는 이들에게 마음이 각별할 것이다. 그게 인간사회의 도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고권력자가 되려면 그런 정의(情誼)를 초월해야 하지 않을까. 박근혜 주변에는 혼탁한 물이 고이고 있다. ‘미래권력’을 팔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사람, 과거 정권마다 권력자 친인척에 달라붙었던 이, 박근혜에게만 주파수를 맞추거나 눈도장을 찍으려는 이들…. 박근혜는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재를 널리 구해야 한다.

넷째, 비효율적인 후진 정치관행을 없애야 한다. 새 정치를 외치면서도 박근혜는 과거에 빠져있는 게 적지 않다. 그가 출입국할 때 의원 수십 명이 우르르 공항에 나가 VIP실을 메웠다. 의원들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공항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낭비가 얼마나 큰가. 어느 선진국에서 유력 대선 후보가 이런 구태를 보이는가. ‘나오지 말라’는 한마디면 되지 않는가. 약자일 때는 그런 세(勢) 과시가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자가 되고 나서도 박근혜는 반복했다. 의원들의 요란한 선거용 출판기념회도 비슷한 경우다. 본디 ‘출판’이 얼마나 거룩한 이름인지, 선거용 출판기념회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박근혜는 잘 알 것이다. 박근혜는 의정(議政)을 공부하는 본래의 자리로 의원들을 돌려보내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되든 안 되든 이 네 가지만 공약해도 박근혜는 정치개혁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이다. 만약 집권하여 이를 실천하면 한국 사회는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정권교체의 생명은 변화다. 과거 정권과는 달라야 국민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에너지를 모은다. 사람이 달라지고 관행이 바뀌어야 정책도 약발이 먹히는 것이다. 정권은 옛날 그대로인데 경제·복지·성장·교육을 외친들 국민이 감동하겠는가. 아버지가 했던 혁명의 절반만 이뤄도 박근혜는 성공한 정치가로 기록될 것이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중앙일보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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