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저녁 중국 천진(天津)에 있는 한국 기업인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피가 거꾸로 솟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해경 대원이 중국 어민의 칼에 찔려 죽었는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어민의 합법적 권익과 인도적 대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불법월경(越境)에 불법조업, 살인까지 저질렀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중국인들 머릿속에 '한국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의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기막힌 현실은 '조용한 외교'라는 미명 아래 우리 정부가 저자세 굴욕 외교로 일관해온 결과"라면서 "올여름 주중 한국대사관이 천진 한국국제학교에 대한 현지 촌(村) 정부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여 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도 전형적인 굴욕외교 사례"라고 지적했다.

2008년 박경조 경위에 이어 이청호 경장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재중(在中) 한국 기업인의 우려처럼 정부가 검토 중인 대책들은 3년 전 박 경위 사망 때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 경장 사망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한·중 관계의 협력 틀을 깨지 않도록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처리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양국 관계의 틀은 구체적인 현안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만들어가는 것'이지, '협력'이란 이름하에 중국 눈치를 보며 어물쩍 넘어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몇 가지가 지적된다. 첫째 서해의 불법조업이 돈이 되기 때문이고, 둘째 한국 해경에 나포될 확률이 매우 낮으며, 셋째 단속돼도 돈만 주면 풀려나고, 넷째 한국 정부의 법집행 의지가 박약하고, 다섯째 귀국 후에도 중국 정부의 처벌이 경미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무역업체 대표는 "20~40척의 중국 선단이 한 번 월경으로 3억~4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수천 척이 월경하여 그 중 몇 척이 잡힐 뿐이며, 한국 해경에 나포되어 5000만~1억원의 벌금을 물어도 남는 장산데, 불법조업을 안 하면 바보라고 중국인들은 말한다"고 했다. 게다가 중국 어선들은 국제적으로 허용된 그물코보다 더 촘촘한 그물로 서해의 어족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근절하려면 선주(船主)들이 얻는 '이익'보다 '손실부담'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엄정한 법집행 의지로 그들이 한국법을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어민들의 대응양상에 따른 단계적 가중(加重)처벌과 위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형사처벌, 무력저항에 대한 실탄 사용, 경제적 타격이 되는 벌금의 상향조정, 단속장비와 인력의 획기적 확대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동영상과 무기·불법그물 등 불법조업 어선에 대한 정보를 중국의 중앙·지방정부에 제공하고, 처벌 결과를 확인받는 정부 간 협력도 병행돼야 한다.

이번에 한국 정부는 국제법과 한·중 어업협정, 우리 국내법에 근거한 확실한 불법조업 근절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만이 수교 20주년을 앞둔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의 토대가 되며, 두 해경 대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지해범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16일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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