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에서 왜 이런 규사(硅沙)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10년 전, 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님의 폐 아래 물혹 수술을 한 미국 의사들의 의문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또 규사가 나왔습니다.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한 달 전, 옛날 그 부위를 다시 수술한 우리나라 의사들이 한 말입니다.
흔하게 쓰이지 않는 말 ‘규사’는 잘디잔 모래알이라는 뜻입니다.

왜 박태준 명예회장님의 폐에서는 그리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잔 모래알들이 나오는 것일까요. 그 수수께끼 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포항제철이 들어서 있는 포항 영일만은 거센 바닷바람 휘몰아치는 모래 벌판이었습니다.

또한 광양제철이 세워진 광양만도 세찬 바닷바람 타는 허허벌판 모래밭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모래 먼지 자욱하게 일어나는 속에서 박태준 명예회장님은 25년 동안 공사를 직접 지휘하며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을 세우신 것입니다.

사장이면서도 뒤로 물러나 있지 않고 공사 현장에 직접 나선 25년 세월 동안 자잘한 모래알들은 거침없이 그분의 폐로 침투해 들어갔던 것입니다.

오늘의 포스코가 없었다면 이 나라의 가전산업·자동차산업·조선산업이 이렇게 융성할 도리가 없었고, 세계 9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조국의 오늘의 경제 번영을 이룩해내기 위해서 앞이 안 보이도록 진한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을 피하지 않았고, 모래알들이 몸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분은 결국 그 모래가 일으킨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탄광의 막장에서 오래 일한 광부들은 모두 진폐증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분은 민족경제라는 탄광의 막장에서 쉼 없이 곡괭이질을 하시다가 폐를 망쳐 돌아가신 산재(産災) 노동자였습니다. 그것도 퇴직금도, 산재보상도 전혀 받지 못한 외로운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늘의 포스코가 그분의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또는 그분이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자인 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20여 년 전 광양제철을 준공시킨 다음 몇 개월 후에 어이없는 정치보복을 당해 포스코를 떠나 망명길에 오를 때 그분은 퇴직금을 전혀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예회장으로 복귀하신 다음에도 주식을 한 주도 갖지 않았고, 당연히 받는 것처럼 되어 있는 스톡옵션이라는 것도 전혀 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세상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정직과 청렴은 포스코를 세워 조국의 경제를 일으킨 업적에 못지않은 참된 인간의 길을 보여준 우리의 영원한 사표입니다. 더구나 집 판 돈 14억원 중에서 10억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시고 집 없는 신세로 돌아가신 사실 앞에서는 전율마저 느낍니다.

“우리의 레닌 동지가 이루고자 했던 이상향이 여기 있다!” 1990년 포스코 공장을 견학한 모스크바대학 총장이 한 말입니다. 포항과 광양 공장을 빼닮은 중국 장가항의 포스코 전원 공장은 중국 모든 철강 회사들의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그분은 전 사원들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자식들에게 대학까지 장학금을 지원한 최초이자 마지막 기업인이었습니다. 그 어느 대통령이 이분보다 큰 업적을 세웠습니까. 그분은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다운 조국의 일꾼, 민족의 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100년 지나도 얻지 못할 크나큰 별을 잃었습니다. 고인이 떠나신 빈자리가 겨울 하늘처럼 넓고 적막합니다.

고생스러우셨지만 값지게 사신 이여, 우리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바치옵나니, 먼 길 편안히 가시옵소서.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중앙일보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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