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트린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부도 위기가 방만한 재정정책에서 비롯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나라에서 산업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데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패와 탈세를 근절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했던 근시안적 정책에 있다 할 것이다.

요즘 돌아가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들 남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거대한 기류에 휘말려 정부와 여당마저 복지정책 경쟁에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정책 예산을 늘림으로써 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멀어진 민심을 다시 끌어들이자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아동들의 무상보육 지원정책을 꼽을 수 있다. 정부가 국회에 새해 예산안을 제출한 상태에서 다시 방침이 긴급 변경됨으로써 5천억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들어가도록 되었다는 얘기다. 당초 0~4세 아동에 대해 소득하위 70%에 대해서만 보육료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던 데서 모든 계층으로 무상보육 범위가 확대된데 따른 결과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5%로 되어 있던 연금액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6%로 높아진 결과다. 이렇게 예산안이 확정될 경우 역시 5800억원 이상의 재정지출이 더 늘어나게 된다. 앞서의 아동 보육료 지원 범위가 청와대의 방침으로 변경됐다면 기초노령연금은 국회 상임위원회 심의과정에서 높아졌다는 것이 약간 다를 뿐이다.

아동의 보육비를 지원하고 노인들에 대한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치권이 당연히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문제다. 최근들어 우리 사회의 출산율이 떨어지고 노령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동 및 노인정책에 대해서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서민 가정의 생활보호 문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재정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선거의 표심 위주로 이뤄지는 정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권이 눈앞의 한 표를 위해 포퓰리즘에 빠져 ‘퍼주기 정책’에 치중하게 된다면 우리도 남유럽 국가들처럼 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가 어렵다. 이런 식으로 늘어난 내년의 복지예산안이 3조원 규모에 이른다. 당장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정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정치인들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볼 수는 없다.

이렇게 복지예산이 확대됨으로써 2~3년 안으로 잡아놓았던 균형재정 목표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농어업 분야 추가대책도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더구나 지난 9월에 발표된 국가재정운용계획(2011~2015년)에서 균형재정 계획이 마련됐다가 불과 석달만에 계획이 무너지게 됐다는 점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재정운용의 건전성이 무너지고 만성적인 재정 적자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재정상태가 남미 유럽국들에 비해 아직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여유를 부릴 만한 처지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현재 정부채무는 407조원 규모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36% 수준으로 그리스(147%), 이탈리아(126%), 포르투갈(103%)에 비해서는 물론 독일(87%), 프랑스(94%) 등에 비해서도 양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3년 동안 우리의 재정적자는 31.7%가 늘어나 OECD 회원국 평균치(12.6%)와 비교하면 2.5배의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공공기관과 공기업 채무를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긴박해진다. 결국은 정부가 세금으로 떠맡아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정부 채무에 포함시킬 경우 전체 규모는 이미 600조원에 이르러 GDP 대비 비율도 60%를 넘어서게 된다. 지금과 같은 재정확대 정책이 지속될 경우 내년에는 국가부채가 470조원에 이르러 공기업 부채까지 감안하면 800조원 규모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 국가 재정이 ‘양날의 칼’로서 제대로 집행되지 못할 경우 그 결과가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허영섭 논설위원<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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