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던 4일 로마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엘사 포르네로 이탈리아 복지부 장관은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방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우리는…요구….” 옆에 있던 마리오 몬티 총리 겸 재무장관이 “사크리피치오(sacrificio·희생)”라고 그녀 대신 말해줬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장관에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국민 복지를 대폭 깎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심경이 오죽 괴로웠을까.

하지만 장관은 강했다. 6일 의회에서 그녀는 “잘못된 연금체계에 도끼질을 했다”는 표현을 써가며 국민연금 개혁방안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은퇴연령이 현재 남자 65세, 여자 60세에서 내년엔 각각 66세, 62세로 높아져 연금 수령시점이 늦춰진다. 여자 은퇴연령은 2018년까지 66세로 조정된다. 조기 은퇴하면 연금이 깎이고 70세까지 일하면 혜택이 주어진다. 현재 평균 58세 3개월에 은퇴하는 이탈리아 국민은 이번 조치로 은퇴 연령이 8년 가까이 늦춰진다고 봐야 한다. 연금 산정 기준도 퇴직 당시 임금이 아니라 근로연수로 바뀌어 연금액이 줄어든다.

연금개혁으로 정부지출이 3년간 90억 유로(약 13조6000억 원) 감축될 것이란 계산이다. EU에서 경제규모와 견주어 연금지급이 가장 많은 이탈리아가 연금에서 매년 4조 원 이상 절약한다면 성공적이다. 포르네로 장관은 ‘집단적 빈곤화를 막기 위한 방안’이라고 강조해 EU 투자은행들로부터 “대담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몬티 총리는 연금개혁과 세수(稅收)증대 등으로 3년간 300억 유로(약 45조 원)의 재정긴축을 약속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선거공약으로 없애버린 1가구1주택 재산세도 되살린다. 이탈리아는 집값이 비싸도 재산세 세수가 전체 세수의 2%로 미국 영국 등의 10∼20%에 비해 턱없이 적다. 정부는 자가용비행기 스포츠카 요트 등 사치성 소비재에도 세금을 매기고 현금거래를 최소화하는 등 ‘탈세와의 전쟁’에 나선다. 지하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21%에 이른다는 이탈리아의 변화가 관심거리다.

긴축안에 대한 야당과 노조 일각의 반대 속에서도 국민의 지지율이 70%로 비교적 높다. 하지만 내년 2∼4월 만기가 되는 이탈리아 국채 1360억 유로(약 170조 원)를 제대로 상환할지는 미지수다. 내년 봄에는 그리스가 ‘질서 있는 디폴트(국가부도)’ 합의에 실패해 결국 ‘무질서한 디폴트’로 가거나 프랑스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이 발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잔인한 달’을 맞으면 EU는 더 가혹한 개혁안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는 그리스 같은 오래된 과잉 복지나 아일랜드 같은 금융산업 붕괴 때문이 아니다. 지하경제를 줄이고 재정을 튼튼하게 하지 못했고 나라 빚이 급증하는 데도 무대책이었으며 복지누수는 방치하고 인기정책만 거듭한 결과다. 잔 펀치를 많이 맞고 휘청거리는 권투선수 격이다.

우리나라는 재정 성장 등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와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말만 하다가 위기를 맞은 수많은 사례에 유념하라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조언은 한국에도 의미가 있다. 내년 예산안에 야당이 5조∼10조 원, 여당 일각에서 3조 원의 복지예산을 추가하라고 압박하는 요즘 상황을 그냥 놔두면 곧 이탈리아 위기를 추월할 듯하다.

정치권 압박에 이명박 대통령도 복지확대로 기우는 느낌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취임 때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전사처럼 (나라 곳간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훗날 어떤 장관이 이탈리아의 복지 장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려면 박 장관이 전사처럼 재정을 지켜내야 한다. 중장기 계획에 없던 끼워 넣기 복지, ‘정치복지’는 위험하다.
<동아일보 1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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