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검토 문건을 보면 언론 검열, 국회 장악 등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12·12사태'를 연상시킨다. 누가 봐도 계엄령 실행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군 조직의 특성상 지시가 떨어지면 실무조직에서는 실행을 염두에 둔 세부계획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지만 이번 계엄문건에 대해선 적지 않은 국민이 엄중한 사안으로 본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기무사 문건대로 쿠데타를 방불케 하는 계엄령을 실제로 모의하고 실행을 추진한 세력이 있었는지 밝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은 수사단 밖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논쟁과 공방보다 실체적 진실을 원한다. 그런데도 계엄문건을 둘러싸고 군 내부 당사자 간에 진실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어 혼란스럽다. 24일엔 공개석상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기무사 간부들과 진실공방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보였다. 진실은 수사로 가려지겠지만 군 내부의 진실공방에 군인들조차 혀를 찼다고 한다.

기무사의 대응에 의아한 면이 적지 않다. 24일 국회 국방위에 기무사령관 외에 참모장, 처장 등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한 핵심 간부들이 총출동한 것은 드문 장면이었다. 통상 수사 대상자들은 국회의 증인출석 요청에도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불응하는 것이 군의 관례다. 특수단의 수사대상인 이들이 대거 출석한 것은 작심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무사령관 윗선의 지시로 계엄 검토 문건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기무사 입장에선 내란 음모에 쿠데타 모의세력으로까지 내몰리는 현실이 불만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공개석상에서 직속상관인 국방장관을 코너로 모는 장면에선 기무사의 의도에 의구심도 든다. 송 장관이 추진 중인 `기무사 대대적 개혁'에 기무사가 조직적으로 저항한다는 항간의 소문을 불식해야 한다.

기무사 대령의 증언대로 국방부 간담회에서 송 장관이 계엄문건에 대해 `문제없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송 장관의 판단력에는 문제 있다고 봐야 한다. 그가 군 일각의 주장대로 기무사 계엄문건이 '사회 혼란에 대비한 통상적 대응방안'으로 판단했다가 '엄중한 사안'이라는 청와대의 발표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송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장관으로서 리더십은 손상이 적지 않은 편이다. 정부는 차질 없는 군 개혁과 군심 잡기에 나서는 방안을 모색하길 바란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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