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16일(현지 시각) 한국산 등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고강도 수입 규제안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철강의 경우 한국, 중국, 브라질 등 12개 국가 제품에만 53%의 초고율 관세를 물리는 방안과 모든 제품에 일률적으로 24% 고율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2017년의 63%로 제한하는 방안 등 3개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중 어떤 방안을 선택하더라도 우리 철강업계는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중국, 러시아 등 5개국(한국 제외) 제품에만 23.5% 관세를 도입하거나 모든 제품에 7.7% 관세를 일괄 적용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2017년의 86.7%로 제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상무부는 철강에 대해서는 4월 11일까지,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4월 19일까지 결론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제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행정각서 서명으로 발령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것이다. 이 조항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무부는 대통령의 법안 서명 직후부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국가 안보 영향조사'를 진행해왔다. 조사 결과 수입산·철강과 알루미늄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수입 규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수입 규모가 미 경제를 약화하고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결론 냈다"고 말했다.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가 실제 적용된 사례는 두 차례뿐이고, 마지막으로 적용된 게 1981년이라고 한다. 그만큼 미국 안에서도 적용에 논란이 있다는 의미다. 지난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초청 여야 상하의원 간담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232조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대미 최대 철강 수출국인 중국도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제품은 안보와 아무런 상관없는 저가 제품"이라며 반발했다.

정부와 철강업계는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7일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업체 최고경영자(CEO)가 참여하는 민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대미 철강 수출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시나리오별 영향을 분석한 뒤 피해 최소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347만t, 34억800만 달러어치다. 상무부 규제안은 이미 적용 중인 관세에 추가로 부과된다. 철강업계에서는 "이번 상무부 제안은 사실상 수출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제품의 80%에 이미 관세가 부과되고 있어 추가 관세가 덧붙여지면 경쟁력과 이익률이 떨어져 타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미국의 통상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가 발동됐다. 2002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제품에 발동한 세이프가드를 16년 만에 다시 꺼냈다. '자국산업의 심각한 피해'를 이유로 합법적인 수출에도 들이댈 수 있는 세이프가드나 무역확장법 232조는 함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국제 무역질서를 교란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고 상대국의 역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서인지 미정부의 통상압박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최대 무역적자를 안겨준 중국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당장 우리 피해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발 통상전쟁의 파고가 세탁기와 철강을 넘어 우리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나 자동차까지 영향을 주지 말란 법이 없다. 지난번 세이프가드 조치 이후 미국에 양자협상을 요구하는 그룹이 생겼다고 한다. 정부와 관련 업계는 이런 나라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총력을 다해 피해 최소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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