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의 세계무역기구인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가 탄생한 후 70년을 <Economist>지가 요약했다.

 

1947년 10월 30일 GATT협정이 체결되었을 때는 찬사가 넘쳐흘렀다. 신문들은 이것을 “세계무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협상결과”라고 칭송하였다. 다만 당시 <Economist>지는 이것을 지금까지 발표된 것 중 가장 길고 복잡하고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평했고 영국 신문인 <The Daily Express>는 “거대한 나쁜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투덜거렸다.

 

이 협정의 복잡성은 글로벌 무역업무의 얽혀있는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보호무역정책이 극심했던 관계로 상거래는 질식 상태에 있었고 1930년대 대공황으로부터의 회복도 늦어졌다. 또 GATT협정의 길이는 포괄범위가 넓은 만큼 길었다. 이 협정은 관세인하에 관한 것은 물론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서약까지 규정하고 있었다.

 

GATT 협정은 세계무역의 70%를 점하는 23개국을 포괄하는 것이었으며 사상 최초로 규칙에 입각한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구성한 것이다. 이 협정은 48년 동안 잠정협정 상태로 남아 있다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로 변신하였다.

 

이미 70년이 지났지만 GATT 협정 때 문제가 되었던 일들이 아직도 큰 문제로 남아있다. 그 첫째는 야심과 현실간의 트레이드오프이다. 1947년 미국 대표들은 규제영역도 더 넓고 회원국도 더 많은 더 큰 국제무역기구를 계획했었으나 너무도 큰 야망에 억눌리어 그 계획은 그냥 무너지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164개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는다는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WTO회원국들은 몇몇 나라 사이의 다자협정(예: 한미FTA)으로 돌아서고 있다.

 

둘째는 통제와 협동간의 트레이드오프이다. 요즘 유럽연합을 떠나려는 영국인들은 “통제를 되돌려 받기를” 원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의 무역협정들이 미국을 우선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GATT가 태동하고 있을 때 케인즈는 모든 나라가 관세를 포기함에 따른 혜택은 관세포기에 따른 손해보다 클 것이라고 믿었으면서도, 영국이 고용수준을 통제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인 관세 결정권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시련도 있다. 지금 WTO가 제11차 장관회의를 준비하고 있으나 미국의 리더십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수출 증진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1947년에도 미국 대표는 미국에게 유리한 협정을 얻기를 원했고 영국이 자국 식민지들의 관세율을 낮추는 것을 거부하자 협상을 중단하려 하였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GATT의 혜택이 유럽의 재건과 미국의 지정학적 동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영국과 타협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들은 무역협정이 관세율조정 이상의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The Economist 2017. 11. 4. p.76 Trade deals: Jolly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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