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공중목욕탕인 아케보노 유의 닳아 벗겨진 마루를 지나 타일이 깔린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거의 교회 같은 정적이 있다. 가끔 탕 물이 쏟아지는 소리, 탕으로 들어가는 노인의 만족스런 신음소리가 그 정적을 깨기는 하지만. 벽에 걸린 그림은 도쿄로부터 1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눈 덮인 후지 산을 보여주고 있다.

 

공중목욕탕들은 한 때 사찰에 부속된 일이 있어서 아직도 이것들은 종교적 냄새를 풍기고 있다. 수세기동안 이들 목욕탕에서는 남녀가 빨가벗고 같이 목욕을 했다. 1964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까지 도쿄의 가정 중 40%는 집에 목욕탕이 없어서 수백만 명이 밤 목욕을 공중목욕탕에서 해야 했다.

 

그런 날들은 이미 지나갔고 목욕탕 굴뚝도 스카이라인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전국목욕탕 협회에 의하면 공중목욕탕은 2,700개에서 정점을 찍고 지금은 600개도 못되는 수가 남아 있다. 그리고 거의 노인들이 경영하고 있다.

 

손님을 모시는 것도 이제는 투쟁이다. 외국 여행자들을 위해 영어로 된 목욕에티켓 간판을 내걸고 있고, 미장원과 마사지 방도 개설하였다. 어떤 곳은 한걸음 더 나가서 젊은이들을 끌어드리기 위해 음악 콘서트, 바둑, 그리고 나체코미디까지 열고 있다.

 

아케보노 유의 주인인 데루오 시마다 씨는 이제 손님은 목욕만을 위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주어야 한다. 그의 목욕탕은 은퇴자들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변해가고 있다. 어떤 이는 맥주나 사케를 마시고 있고 다른 이들은 화면 큰 텔레비전에서 스모를 보고 있다. 목욕탕 안에는 수포가 나오는 장치, 늘어지는 피부와 성욕에 도움을 준다는 전기 쇼크를 주는 장치 등을 설치하였다.

 

시마다 씨의 목욕탕은 1773년 그의 조상이 1000미터 밑에서 발견된 화산수 물줄기를 이용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목욕탕은 1923년의 대지진과 1945년의 미군공군의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이 목욕탕은 각 가정에 목욕탕이 만들어지고 있어도 버틸 수가 있었으나 공중목욕탕에 대한 사회태도의 변화에는 견디기 어려워하고 것이다.

 

시바다 씨는 그의 딸이 근무시간도 길고 소득도 시원치 않은 이 사업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비통해하고 있다. 한 때 그는 자기 딸의 결혼을 주선하면서 사위에게 이 사업을 인수하도록 종용한 일이 있었으나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다. 그는 19세대가 지난 이 시점에서 목욕탕은 그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The Economist 2017. 8. 12. p.19 Tokyo's vanishing bath-houses: Troubled w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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