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우 여행칼럼니스트

제주 올레길 2코스 시작점은 광치기해변이다.

가려면 제주시외버스터미널과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701번 동일주 시외버스를 타고 광치기해변에서 하차하면 된다.

이 해변은 썰물 때면 드넓은 평야와 같은 암반지대가 펼쳐진다. 그 모습이 광야와 같다고 해 광치기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광치기는 제주어로 빌레(너럭바위)가 넓다는 뜻이다.

광치기해변과 성산일출봉, 드넓은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광경은 이 코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필자는 폭염에 아랑한 곳 하지 않고 이 매력에 흠뻑 빠져보고 싶어 또 한 번 찾았다. 제주 올레길 2코스는 광치기해변~내수면 둑방길~식산봉~오조리마을~홍마트~대수산봉~혼인지~온평포구 약 14.5km 거리다. 걸어서는 4~5시간 정도 걸린다.

올레길 2코스는 처음 얼마간은 성산·오조 지질트레일과 겹쳐 있어, 걷다보면 절로 생물지리학적·생태학적인 지식까지 쌓을 수 있다.

대수산봉을 목전에 두기까지는 부담 없이 산책하기에 참 좋다. 산책로도 잘 돼있다. 내수면 둑방길을 걷다보면 자연이 주는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 가지 주의할 게 있다. 길 위에서 말과 마주할 수 있다. 피해가는 게 상책이다.

2.3km 지점에 높이 40여m의 오름으로 바다에 직접 잇대어 있는, 식산봉이 자리하고 있다. 오조리마을은 고려 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고 한다. 마을을 지키던 조방장은 적들에게 군사 수를 많이 보이게 하기위해 이 오름을 군량미가 산처럼 쌓인 것처럼 꾸몄다고 한다. 이후로 이 오름을 식산봉으로 부른단다.

식산봉은 그 주변과 어우러져 뽐내는 아름다운 경치로 ‘성산10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식산봉 정상에 서면 우도와 성산항, 성산일출봉이 눈앞에 가까이 보인다.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구름다리를 지나 3.3km 지점인 오조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용천수 ‘족지물’이 반겨준다. 오조리는 제주에서 용천수가 풍부한 마을이다. 예전에는 ‘족지물’로 식수와 빨래, 목욕은 물론이고 소와 물을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족지물’에 발을 담그고 잠깐 쉬었다 가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다음을 기약하고 그냥 지나쳐 갔다.

한적한 오조리 마을을 지나는 길 내내 성산일출봉이 눈에 들어온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어디서든 자기만을 바라보라는 듯이.

마을 끝자락부터는 철새도래지 길이 이어진다. 눈앞에 생태 숲과 호수가 펼쳐진다.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하다. 몇몇 철새는 날개 짓하며 필자를 반겨준다. 성산지역은 철새들의 겨울나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한다.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말들과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백로들의 모습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이색적인 풍경이다. 이들의 공존이 참으로 이채롭다.

고성리 마을을 지나 7.7km 지점에서 ‘대수산봉’을 만났다. 대수산봉은 예전에는 오름에 물이 솟아나 못을 이뤘던 게 ‘물메’라 불려졌다. 오름 정상에서는 성산일출봉과 광치기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수산봉을 내려와 녹음 짙은 숲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보니 어느 덧 ‘혼인지’에 도착했다.

혼인지는 삼성혈에서 태어난 탐라의 시조 고·양·부의 3신인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온 함 속에서 나온 벽랑국 세 공주를 맞이해 각각 배필을 삼아 이들과 혼례를 올렸다는 곳이다.

조금 걷다보면 ‘신방굴’이 나온다. 고·양·부 삼신인과 벽랑국 삼공주가 합방을 했다는 곳이다. 굴 입구로 들어가면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어 각각 신혼방을 꾸몄다고 전해진다.

필자는 ‘신방굴’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혹시나 나를 기다리는 공주가 없나 해서다. 대수산봉을 숨 헐떡이며 겨우 넘어왔는데 내 각시는 어디에.

힘을 내 걷다보니 어느 덧 마지막 지점인 온평포구에 도착했다. 환해장성과 온평리 앞 바다가 나를 반겨준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300여리, 약 120km에 쌓은 석성이다.

걸어서 완주해 고생한 보상인 듯, 시원한 청량감을 주는 바닷바람이 온 몸의 땀을 씻겨준다. 가슴을 쫙 펴고 숨을 크게 들여 마셔, 제주바다의 기운을 몸 속 가득 채워본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제주 올레길에서는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풍광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다. 또 마을 지형에 얽힌 전설과 문화, 역사도 읽어 낼 수 있다. 지구상에 이런 길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이승우 여행칼럼니스트(전 대경대 교수)

이디저디(‘여기저기’의 제주어) 여행인문학 강의·여행칼럼
010-9331-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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