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캐나다에서 살다가 지난달 모처럼 한국을 찾은 신 모 씨(32·여·서울 가회동)는 공항 밖을 나오는 순간 심한 호흡 곤란을 느끼고 캐나다에 거주하는 부모님에게 이런 채팅 메시지를 보냈다.

신 씨는 "마치 과거 태국 여행을 갔다가 방콕 시내 오토바이 매연을 들이마셨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며 "서울에 온 지 거의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목과 코가 염증 때문에 부어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미세먼지로 뿌연 서울 하늘

미세먼지로 뿌연 서울 하늘

최근 한반도를 덮은 심각한 미세먼지는 신 씨와 같은 외래인 뿐 아니라, 수 십 년간 이 땅에서 생활한 한국인에게도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이었던 생활의 많은 부분이 미세먼지 탓에 '그 날 운이 좋아야 겨우 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됐다.

가족과 함께 매일 저녁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게 큰 낙이었지만, 최근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거르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건강을 위해 걷다가 오히려 미세먼지를 더 많이 들이마실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취미인 주말 등산도 수개월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김 모 씨(49·남·서울 대치동)는 요즘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내가 요리를 시작할 때면 미세먼지 스트레스는 절정에 이른다. 조리과정에서 나오는 심각한 미세먼지를 빼내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자니 밖으로부터 유입되는 미세먼지가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미세먼지 때문에 경제적 부담까지 늘었다.

김 씨는 얼마 전 미세먼지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마스크를 5만 원어치나 샀다. 꽤 큰 지출이지만, 일회용이기 때문에 네 명의 가족이 매일 사용하니 2~3일 만에 동났다. 미세먼지 농도가 계속 '나쁨' 수준이라면, 김 씨 가족의 가계부에는 한 달 수십만 원의 '마스크 구입비'가 새 정기 지출 항목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 몸에 미세먼지가 축적될 수 있다'는 얘기에 서둘러 수십만 원대 공기청정기도 주문했다.

김 씨는 "돈을 들이고도 미세먼지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면, 차라리 방독면을 쓰고 싶다"며 "한 때 공기 나쁜 곳에 사는 중국인을 측은하게 생각했는데, 내 얘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를 쓰고 운동회에 참여하는 학생들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를 쓰고 운동회에 참여하는 학생들

신 모 씨(43·남·서울 본동)는 지난 1일 초등학생 아들 운동회에 갔다가 헛걸음을 했다. 당초 학교에서 공지한 운동회 시작 시각은 오전 10시였지만, 갑자기 9시 20분께 "미세먼지 때문에 2학년 운동회는 9시 30분부터 실내 강당에서 진행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서둘러 강당을 찾았지만, 이미 운동회는 '약식'으로 20분 만에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 씨는 "40여 년 평생 내 운동회, 주위 사람들 운동회를 많이 겪었지만, 공기 질 때문에 운동회가 사실상 취소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무원 전 모 씨(31·여성·서울 마포)는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최근 수십 년 만에 다시 안경을 끼었다.

전 씨는 "콘택트렌즈를 별 이상 없이 잘 사용해왔는데, 최근 미세먼지가 심한 날 렌즈를 끼면 눈이 뻑뻑하고 간지럽다"며 "그래서 고등학교 이후 끼지 않았던 안경을 다시 찾아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인 날에 사용한다"고 전했다.

직장인 박 모 씨(35·여성·서울 연희동)는 최근 수개월째 창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창문을 열고 환기하고 침구를 널어 소독하는 일상을 즐겼으나, 미세먼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창문 열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빨래도 밖에 널지 않고, 최근 산 빨래 건조기로 실내에서 말린다.

박 씨는 "창문을 여는 순간 집안 공기가 탁해질 것 같은 불안에 창문을 굳게 닫는 버릇이 생겼다"며 "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돼 마음 놓고 창문을 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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