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인더 헤모필리아라이프팀 유성연 기자] 중증 혈우병 환자들은 불합리한 ‘건강보험 급여인정 기준’ 때문에 치료제를 처방받기 위해 월 2-4회 이상, 연간 약 40차례나 병원문턱을 넘나들어야 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빈번하게 병원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목적은 ‘단지 약품처방을 받기 위해’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근 혈우사회 전문가는 “혈우병 환우들이 전문의료인과 자주 만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만 단순한 약품처방 때문에 빈번하게 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의료인도, 환자들도 매우 버거운 일”이라며 “특히 학생이나 직장을 갖고 있는 환자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혈우병 환자들이 이처럼 잦은 내원을 해야 하는 이유는 현행 건강보험 기준 때문이다. 세부보험급여 인정기준을 살펴보면, 혈우병 환자가 “1회 내원 시 최대 5회분(만18세 이하의 중증 환자는 6회분)까지, 매월 총 10회분(만18세 이하의 중증 환자는 12회분)까지 인정”되고 “매월 10회분(만18세 이하의 중증 환자는 12회분)을 투여한 이후에 출혈이 발생하여 내원한 경우에는 1회 내원 당 2회분까지 인정하며, 의사소견서를 첨부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즉, 성인 혈우병환자가 10회분(소아 12회분)의 치료제를 처방받기위해 매월 2회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그 이상 출혈이 발생됐을 때는 매번 출혈 시 병원을 방문해야 혈우병 치료제의 보험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다. 만약 1회 방문으로 1~2개월의 치료제를 처방하게되면 치료제 처방만을 위한 낭비되는 진료비 상당부분을 절감할 수 있다. 아울러 치료제 처방 목적의 내원 환자 수는 현격하게 줄어들게 되고, 반면 혈우병 전문의와 환자는 의료상담 등 효과적인 진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월 평균 4회 가량 병원을 방문하고 있는 혈우병 환자 A씨(인천거주)는 “매주 병원을 방문하고 있는데 외근일정이 없어도 (병원에 가기 위해)일부러 잡아서 나가고 있다”면서 “약이 있어야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했다.

다른 혈우병 환자 B씨(김포거주)는 “일이 바쁘면 병원에 가지 못한다”며 “그럴 때는 그냥 타이레놀 한판씩 먹으며 버틸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환자 C씨(서울거주)는 매월 두세번씩 병원에 간다면서 “불편한 몸 때문에 일을 못하고 있다.”며 “재단(병원) 가서 약타는 건 혈우병 환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포기하듯 말하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다. 어렵게 ITI(면역관용요법, 항체치료)를 진행하던 한 혈우병 환자는 일 때문에 치료제를 타러 가지 못해, 치료기회를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ITI는 항체를 갖고 있는 혈우병환자에게 쉽게 오지 않는 치료의 기회이다. 혈우병 치료제를 대용량으로 투여하면서 항체를 없애는 치료법인데 보험적용을 받기위해서는 사전에 치료신청을 한 뒤 심사평가원의 위원회 소집 후 치료결정을 받아 진행하게 된다.

이에 김승근 혈우사회 전문가는 “혈우병 전문의 소견에 따른 환자의 맞춤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월 1회 방문으로 1개월치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환자들에게 1개월씩이라도 처방을 받게 된다면 프로플락시스(예방요법)도 수월해지기 때문에 환자들의 생활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개월치 치료제를 1회 병원 방문으로 처방된다고 해서 1인당 총 치료비용이 절대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매번 방문할 때 발생되는 진료비를 절감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혈우병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A의원 P원장도 '급여인정기준'에 문제를 삼았다. P원장은 “(혈우병 환자가 빈번하게 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환자도 고생이고 의사도 고생이다”라며 혈우병 치료제의 건강보험급여기준을 합리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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