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글로벌 외환시장이 출렁거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며 다른 나라들은 통화 가치를 조작한다고 비판했다. 백악관에서 제약회사 임원들과 만난 자리였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취임 후 연일 이민문제 등에 강수를 두다가 이번엔 환율을 조준한 것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가치 절하로 득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블룸버그 달러지수(DXY)는 1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현재 99.430까지 떨어졌다. 약 두 달 만의 최저 수준이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도 개장 초 한때 전날보다 12.1원 낮은 달러당 1,150.0원에 거래됐다. 종가는 1,158.1원으로 하락 폭을 4.0원으로 줄였다. 그러나 종가 기준으로는 83일 만의 최저치였다.

이런 환율의 요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국경세 부과와 함께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한편에서는 한국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작년 10월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은 중국, 독일, 일본, 대만, 스위스 등 5개국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한국은 미국 정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에 해당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로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최선의 결과를 희망하되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장관의 이 말은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환율 공세' 가능성도 그에 못지않게 위협적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단순히 우려로 끝나면 다행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쏟아낸 극단적 반이민 정책들을 보면 마음을 놓기 어렵다. 시나리오별로 현실적인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오해 소지를 미리 없애야 한다. 예컨대 외환 당국이 시장의 일시적 급변동에 대응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 같은 경우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관행이지만 통화 가치 조작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국 우선주의에 오롯이 매달리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방적 논리로 덮어씌우는 보호무역 압력에는 당당히 맞서야 할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 측의 환율 조작 주장을 직접 반박한 것은 참고할 만하다. 이래저래 힘든 상황이다. 지혜를 모아 최선의 합리적인 대응책을 찾아가야 한다.(연합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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