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있는 김해중부경찰서에서는 매주 월, 수, 금요일이면 변호사들이 방문하여 무료법률상담을 실시하고 있으며 본인 또한 그 옆자리에서 매일 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지인과 술을 먹다 폭행을 당한 사소한 문제부터 재산 상속이나 업무상 횡령, 가정폭력 등 다소 복잡한 문제까지 상담을 하고 있자면 주말의 영화 동시상영하듯 수많은 인생 드라마를 두루 목격하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법 없이도 살아갈 순박한 사람들이지만 세상살이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는 때가 있던가. 세상 살다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분명 있는 법.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사로이 시비에 얽히게 될 때도 있고 순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다. 누구든지 경찰서에 앉아있는 변호사나 나를 통해 법률 상담을 받을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수많은 상담을 통해 몸소 체득한 나름의 세상 이치가 있다. 법은 언제나 최후의 순간에 꺼내야 되는 마지막 히든카드라는 사실이다.

법률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 대부분은 자기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쉽사리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처음 상담을 할 때에는 무작정 얘기를 들어준다. 중간중간 그 분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리액션만 취해줘도 내심 안도하고 상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 하지만 상담 결과 그 분들의 의도대로 형사처벌이 안 될 조짐이라도 보이면 흥분을 하고 재차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무작정 법의 잣대로 처벌을 요구하는 것보다 충분히 상호간 대화를 통해, 교감을 통해 서로간의 오해를 풀어 응어리를 푸는 경우도 상당하다.

어느 날인가 구순의 노모와 일흔이 되어 보이는 오빠를 모시고 50대 후반의 아주니 한 분이 찾아와서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구순의 노모는 정신지체가 있는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데 동네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한 분과 언쟁이 있었고 이러한 문제로 그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나서 현실적이고 법리적인 이유를 들어 마냥 형사처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자 그 아주머니는 구순이 넘은 노모의 사후 지적장애가 있는 오빠가 혼자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노모와 언쟁을 벌렸던 그 분이 오빠를 괴롭힐 것이기에 이 참에 고소를 진행하면 앞으로 일어날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바라고 고소를 계속 진행했으면 하였다.

과연 아주머니의 바람대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노모와 오빠를 위한 최선의 길일까? 얼마 남지 않은 노모의 마지막 생을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회상하면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대신 송사를 위해 경찰서로 오고가게 하도록 할 것인가.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지만 여태껏 경험으로 체득한 세상의 이치를 이번 경우에도 적용해보면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노모의 사후 지적장애가 있는 오빠의 생활이 염려가 된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대신 오빠를 노모가 사는 마을 경로당으로 데려가 친분을 쌓게 하고 이웃주민과 어울리게 하면 지금까지의 불편한 관계가 점차 해소될 것이다. 나아가 장차 벌어질 노모의 사후라도 마을의 이웃주민들이 오빠를 챙겨줄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들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물론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했으면 단시간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본인의 의도대로 일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노모는 아마 죽는 순간까지 자식의 염려로 마음 편이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늦어지고 조금 힘들어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이마저도 안될 경우 법에 호소해야 할 것이다. 법은 최후의 순간에 꺼내는 마지막 카드임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게 내가 여태껏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세상의 이치이다. 상담을 했던 아주머니는 고소장을 슬그머니 접어 가방에 넣고는 연신 머리를 숙이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갔음은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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