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이어왔던 우리 경제의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지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주력업종의 부진에다가 조선과 해운 등 취약업종의 산업 구조조정이 예고되면서 산업 현장의 활기가 눈에 띄게 떨어진 모습이다.

미래 불안에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서 소비 마저 감소, 내수 경기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산업 구조조정이 출발점에 선데다 개별소비세 인하와 같은 내수 진작책이 상반기에 종료되면서 경제 흐름을 반전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정 확대와 통화당국의 금리 인하 등 부양책을 서둘러 꺼내놓지 않으면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 주력품목 수출부진에 구조조정 여파까지…생산지표 '암울'

31일 발표된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4월 전체 산업생산은 지난 1월(-1.4%) 이후 석달만에 0.8% 감소세로 돌아섰다.

2월과 3월 잇따라 0.7% 증가를 기록했지만 회복세는 견조하지 못했다.

 

산업생산이 다시 마이너스로 추락한 데는 주력품목의 수출부진 영향이 컸다.

수출은 지난 1월 6년 5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인 -18.9%를 기록한 뒤 2월 -12.2%, 3월 -8.1%에 이어 4월 -11.1%로 다시 두자릿수 감소폭을 기록하면서 회복세가 지연되는 모습이다.

자동차 생산은 연초 신차효과와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로 상승하다가 4월 들어 조정을 받았다. 수출 악화까지 겹치면서 전달보다 생산이 6.3% 감소했다.

선박 등이 포함된 기타운송장비의 경우 조선·해운 분야 구조조정이 한참 진행 중인데다 최근 들어 수주잔량이 감소하면서 12.0% 급감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 동력이 약화되면서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009년 3월(69.9%) 이후 7년여만에 최저치인 71.0%로 쪼그라들었다.

제조업 재고가 한 달 전보다 2.3% 줄고 재고율이 0.9%포인트 내린 124.2%를 기록한 것도 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향후 더 위축될 것을 기업들이 대비하는 신호로 읽힌다.

통계청 김광섭 경제통계국장은 "실적이 안좋아서 재고가 준 것이 아니다. 경기가 안좋을 것을 대비해서 재고가 줄고 있다"며 "생산이 부진하다 보니 1차 금속과 기계장비 등의 부문에서 재고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부문이 어려운 가운데 내수도 위축되고 있다.

소비를 의미하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5% 감소했다. 3월에는 2009년 2월(5.0%) 이후 7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인 4.3% 반짝 증가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미 이뤄진 공사 실적을 의미하는 건설기성도 6.7% 급감했다. 2012년 1월(-14.3%) 이후 4년 3개월 만에 하락폭이 가장 컸다.

◇ 상고하저 흐름…하반기 더 어렵다

문제는 이같은 생산 및 소비 감소세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5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제조업의 5월 BSI는 71로 4월과 같았다.

BSI는 기업이 느끼는 경기 상황을 나타낸 지표로 기준치인 100 이상이면 경기를 좋게 보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BSI가 기준치를 크게 밑돌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섣불리 생산을 늘리기 힘든 상황이다.

내수 역시 경기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1분기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2.1%로 1분기 기준 소비성향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소득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다 향후 경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한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조선과 해운을 시작으로 한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을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우리 경제가 상고하저 흐름을 보이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KDI는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이 2.7%로 전분기(3.1%) 보다 하락하면서 경기 전반이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2분기 3.0%, 3분기 2.4%, 4분기 2.2% 등 상고 하저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KDI의 이같은 전망은 구조조정에 따른 여파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조선 등의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업 등이 현실화되면 성장 둔화폭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광섭 경제통계국장은 "올해는 상고하저 가능성이 높다. 하반기 기술적으로 수치가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추경·금리 인하 등 부양정책 시급"

전체 산업생산이 꺾였지만 정부는 아직 내수가 회복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출 부진 때문에 광공업 생산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소매판매는 전월 기저효과 때문에 줄어든 측면이 큰데다 설비투자 역시 2개월 연속 증가하는 등 소비와 투자 지표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5월에는 수출 부진 완화, 정책 효과 등에 힘입어 회복세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은 정부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내수 회복세가 공고하지만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소비마저 위축돼 제조업 생산이 줄어들고 있고, 구조조정 때문에 기업이 신규투자에도 엄두를 못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 경제성장률은 2.6% 달성도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경기 회복세가 너무 약하다"며 "수출 부진의 영향이 생산과 투자 등 내수로 전이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홍 팀장은 "소비는 최근 한두 달 좋았지만 반짝 효과로 보인다. 경기 불황이 예전보다 길어지는 등 정책효과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6월에는 미국 금리 인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외 변수가 즐비한데다 하반기 들어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 교수는 "올해 경제는 상고하저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상반기인 6월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도 자본 유출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을 텐데 그 경우 경기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교수는 "금리 인하는 자본 유출 우려 때문에 어려울 수 있지만 추가경정예산은 당연히 편성해야 한다"며 "추경 편성 없이 손을 놓는다면 정부가 너무 안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팀장은 "국제유가가 상승 분위기로 가면 수출은 나아질 수 있지만 다른 반등 모멘텀은 약해 보인다"며 "기준금리 인하 등 경기 부양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내수 쪽에서 반등의 힘은 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책팀 

pdhis9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5/31 11:0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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