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알파고와의 4국에서 승리한 이세돌 9단이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박민정 기자] 이세돌 9단은 지난 8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의 첫 대국에 임하며 "좋은 바둑, 재밌는 바둑, 아름다운 바둑을 두겠다." 말했다.

그는 "질 수도 있다"면서도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므로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세돌 9단을 정말로 승패에 관계없이 인간이 바둑을 두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줬다.

알파고에 뜻밖의 3연패를 당한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값진 1승을 거뒀다. 첨단 기술 앞에서 인간이 무력하게 물러나지 않음을 상징하는 1승이었다.

15일 그는 알파고와 마지막 승부에 나선다. 그는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리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의 최종 5국에 출전한다.

5국에서 이기면 이세돌 9단은 거대 IT기업 구글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최신 인공지능을 세 번만 겨뤄보고 약점을 간파한 '고수' 입지를 분명하게 다지게 된다.

그러나 승률은 여전히 낮다. 1천202개 중앙처리장치(CPU) 분산시스템을 등에 업은 알파고의 수 읽기는 여전히 날카롭다. 이세돌 9단이 5국에서 진다고 해도 어느 정도 수긍할 만큼 알파고의 실력은 이미 인정받았다.

구글의 자회사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는 지난 1월 말 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유럽의 프로기사 판후이 2단을 5대 0으로 꺾은 알파고는 세계 최정상 바둑기사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전 상대에 강한 흥미를 느껴 곧바로 수락했다. 5대 0으로 자신이 승리한다는 강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알파고는 생각보다 매우 강력했다. 치밀한 수 읽기와 강한 전투력, 무엇보다 이세돌 9단의 공격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기계다운 냉철함이 무기였다. 결국 1국에서 승부수(102수)에 허를 찔려 무너진 이세돌 9단은 당황한 듯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2국에서 이세돌 9단은 새로운 작전을 펼쳤다. '돌부처' 이창호 9단을 연상케 하는 안정적인 바둑을 펼쳤다. 알파고가 도발해도 응징을 참으면서 신중을 기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알파고가 승리했다.

충격의 2연패 후 이세돌 9단은 동료 기사들과 밤을 새우며 알파고 공략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나의 바둑을 두자"고 결론 내렸다.

3국에서 이세돌 9단은 저돌적인 '이세돌 표' 바둑을 선보였다. 거침없는 흔들기로 알파고를 '장고'에 빠트리기도 했다. 패싸움을 거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유연하게 이세돌 9단의 공격을 피하면서 철벽을 쳤다.

이세돌 9단의 3연패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처음부터 밑지는 승부였다는 비관론이 퍼졌다. 어느새 대국 양상은 '알파고의 도전'이 아닌 '이세돌의 도전'으로 바뀌었다. 이세돌 9단이 한 판이라도 이기면 '인간 승리'라는 말이 나왔다.

이세돌 9단은 조용히 알파고의 약점 연구에 골몰했다. 알파고가 중앙과 복잡한 상황을 싫어한다는 감을 잡았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은 급하지 않게 복잡한 판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공격 시점을 기다렸다는 듯이 알파고의 중앙 허점을 노린 '신의 한 수'(78수)를 끼워넣었다. 학습하지 않은 상황을 맞아 알파고는 드디어 흔들렸고, 이해 불가 악수를 쏟아내며 자멸했다.

경이로운 첫 승을 거둔 이세돌 9단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4국에서 백돌로 알파고를 잡았으니, 이번에는 흑돌로 5국에서 알파고를 이기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5번기는 중국 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백이 더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불굴의 투지로 이미 인간의 자긍심을 높여준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바둑계에 던진 충격도 두려움이 아닌 흥미로움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