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설승은 기자)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끼니마저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자 어설픈 강도 행각 끝에 구속됐던 50대 가장에게 시민들이 십시일반 온정을 베푼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작년 7월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주차장에서는 황당한 강도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한 5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다 몸싸움에서 밀리자 힘없이 흉기를 떨어뜨리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며칠 안 돼 강남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경기도 문산의 한 컨테이너에서 용의자 이모(53)씨를 붙잡으면서 이씨의 사연이 알려졌다.

그는 원래 연매출 100억원에 달하는 건축 자재 회사를 운영한 '사장님'이자 고교생 자녀 둘을 둔 가장이었지만 거듭된 사업실패로 끼니를 못 이을 정도로 극단의 상황에 내몰린 상태였다.

재작년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학교 공사가 급감해 사업이 휘청거리더니 작년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직격탄을 맞아 결국 회사가 부도나고 빚더미에 앉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80대 노모는 암 투병 중이었다.

그는 지인이 마련해준 컨테이너에서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생활했다.

강도질을 하려다 흉기를 떨어뜨린 것도 이틀간 물만 먹어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이씨는 털어놨다.

그는 조사실에서 형사들이 시켜준 볶음밥 곱빼기를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어치우기도 했다.

이씨의 이런 사연이 보도되자 범죄자인데도 사정이 너무나 딱해 돕고 싶다는 시민의 문의전화가 언론사와 강남서에 쏟아졌다.

뉴스를 보고 이씨가 너무 안 돼 눈물을 흘렸다는 30대 주부부터 자신도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다는 중년의 사업가까지 이씨를 위해 써달라며 돈 봉투를 내밀었다.

사업에 실패했다가 재기했다는 한 남성은 500만원을 쾌척했고, 한 중년 남성은 강력팀 사무실을 직접 찾아와 30만원이 담긴 봉투를 놓고 가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고, 마트를 운영하는 한 시민은 생필품을 차에 가득 싣고 이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8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보탠 돈은 2천여만원에 달했다.

이씨는 검거 당시 고3 딸과 고1 아들을 두고 있었으나 시민의 성금 덕분에 두 자녀의 학비 걱정은 덜 수 있었다.

반에서 1∼2등을 다투며 공부를 잘했다는 딸은 서울의 한 대학교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아들은 어려운 가계를 생각해 대학 진학 대신 군 부사관을 꿈꾸고 있다.

수사팀 앞으로는 이씨가 구치소에서 틈틈이 후회와 반성,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각오를 담아 꾹꾹 눌러 쓴 편지가 10여통 넘게 도착했다.

이씨의 편지에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반성과 함께 '범죄자지만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시민들에게 출소하면 꼭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수사팀 관계자는 전했다.

주 2회 면회를 간다는 이씨의 동생은 3일 "형이 범행을 많이 후회하고 있다"며 "도움을 주신 시민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씨는 작년 11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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