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진구 중곡동 태양기름집 전경

[뉴스파인더 정우현 기자]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시끌시끌 활력이 넘치는 중곡제일시장,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냄새가 풍겨오는 곳은 태양기름집. 

마침 유형근(53) 사장이 배달을 막 마치고 돌아와 오토바이의 시동을 끄고 웃음으로 맞이해 준다. 

바로 옆에서는 기름을 짜는 압착기에서 윤기가 흐르는 참기름이 깔때기를 타고 병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기름집이다. 

그런데 뭔가 좀 다르다. 

참기름을 담는 병은 보통 유리병이다. 

그런데 태양기름집에는 유리병만 있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 병도 있다.

 

“유리병을 플라스틱병으로 바꿨어요. 단양으로 택배 보내러!”

▲ 단양으로 이사 간 과거 단골손님을 위해 택배 배달에 쓸 플라스틱 병을 꺼내 보이는 유형근 사장

가게 위쪽에 설치한 선반에서 플라스틱통을 꺼내들며 유형근 사장은 말한다.

“규제 개선으로 택배 배달을 부탁하는 분이 많이 늘었어요. 그래서 병도 바뀐 거예요. 기존의 유리병은 바로 짜서 드리거나, 가까운 거리로 배달 갈 때 여전히 많이 쓰지만, 플라스틱병은 택배용이죠. 유리병은 택배 회사에서 받지 않거든요. 깨지면 기름 새서 다른 택배에 피해를 주니까. 택배가 가능해졌으니 변화에 맞춰서 포장할 때 플라스틱 병도 사용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과거에는 참기름을 택배로 부치지 못했다는 것일까? 답은 “그랬다”이다. 과거에는 즉석판매가공업소의 경우, 고용된 직원이 아니면 배달이 불가능하다는 규제가 있었다. 이 규제 때문에 아무리 고객이 원해도 먼곳까지 직원을 보내 배달할 수가 없었다. ‘총알배송’과 ‘로켓배송’이라는 말이 흔해진 세상인데도 전통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즉석판매가공업소는 직원이 직접 배달을 해야 판매가 가능했다. 택배는 이용할 수 없었다.

유형근 사장은 “대형 슈퍼도 배달이 가능한데 기존의 규제는 불합리”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박태신(61) 이사장도 “전통시장이라 봐주기는 했지만, 불법 배달을 하다 벌금을 물기도 해 어려움이 많았다”며, 블로그를 통한 인터넷 판매 같은 새로운 흐름에 맞추려고 해도, 규제로 인해 세파라치 등에게 적발돼 고발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전통시장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자본이 취약하고 브랜드를 만들기 어려워 갈수록 찾는 사람이 줄었다. 특히 전통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즉석판매제조 및 가공업체 (식품을 제조 · 가공업소에서 직접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영업)의 매출액은 매년 하락했다. 매출액도 2001년부터 2010년까지 40% 이상 꾸준히 하락했다. 이에 반해 대형마트,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매출 상승이 이어졌다.

 

바쁜 소비자들은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해 배달 받는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게 됐다. 음식 뿐만 아니라 반찬이나 반찬 재료까지 배달이 이루어지면서 배달은 매출 증대의 관건이 됐다.

그러나 기존의 전통시장의 즉석판매제조 및 가공업체는 영업장 내에서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하거나, 영업자 또는 종업원이 직접 배달하는 것만 허용하는 규제에 여전히 묶여 있었다. 배달원을 따로 두기 어려운 대부분의 전통시장 업체는 과거의 규제에 묶여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수조차 없었다.

규제 완화로 현실에 발 빠르게 적응해 전통시장 활성화

 

이런 흐름과 문제점을 파악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자가 제조․가공한 식품을 택배로 배달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각종 규제를 개선하는 내용으로 하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2014년 10월 13일 개정·시행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즉석판매제조‧가공업, 식품제조․가공업, 식품소분업 등 「식품위생법」에 따른 영업 활동을 하는데 있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절차적 규제를 개선하여 전통시장 활성화 및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의 판매 방법을 기존의 영업자나 그 종업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여 고시하는 기준에 따라 우편 또는 택배 등의 방법으로 최종소비자에게 배달하는 경우를 허용한 것이다.

식품의약안전처 식품정책조정과 이성규(36) 주무관도 “지속적으로 즉석판매가공업소에서 택배를 허용해달라는 규제개선 건의가 있어왔다”고 말했다.

▲ 배달 보낸 택배 영수증을 보여주고 있는 유형근 사장
▲ 신선한 참기름을 그 자리에서 볶는 모습

서울, 단양, 제천… 전국으로 퍼진 단골과의 인연을 택배가 이어주다

 

7년 전 도곡동으로 이사를 갔던 손님이 태양기름집의 유형근 사장을 다시 찾은 모습이다. 앞으로는 신선한 참기름을 택배로 바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유형근 사장은 “서울 외에도 단양이나 제천 쪽에도 우체국 택배로 보낸다”며 “이사를 간 뒤로도, 문자로 주문을 보내면 우리는 통장 번호로 답장한다. 입금이 바로 되면 당일, 오전 중에 되면 오후에 보낸다. 하루면 도착해 매우 편하다”며, “과거에는 매출 기회가 없던 분야가 개척된 것”이라고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이사 등으로 인연이 끊어졌을텐데 끊어지지 않게 이어주고 있는 것이 택배”라고 말한다. “아직까지는 과도기지만, 좁은 상권이 전국 단위로 넓어져 좋은 부수입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의 규제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방송에 출연해도 예전엔 헛일, 이제는 모든 게 매출로 연결

▲ 손님과 이웃사촌의 정을 나누는 유형근 사장

태양기름집은 방송에 소개된 적이 몇 차례 있다고 한다. “방송을 본 시청자가 연락해오신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나 예전에는 택배를 이용할 수 없는 규제 때문에 가게로 찾아오지 않으면 판매할 수가 없었다.

유사장은 “식당은 방송에 나오면 매출이 오르지만, 우리는 배달 문제로 매출이 오르지 않아 방송을 몇 번 거절도 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택배로 보낼 수 있어서 판매로 연결되고, 더 소문이 나고, 신뢰가 생겨서 매출은 점점 확대되었다”고 즐거워 한다. 전국의 손님에게 질 좋은 기름을 전하게 된 것이다.

마침 인터뷰중에 단양에서 배달 주문을 한 과거 단골손님 박현주(42)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추가로 주문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그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 기름짜는 모습

박현주 씨는 말한다. “참기름을 집 근처 마트 가서 사는 것도 사실 집안 일 바쁘면 불편하고 귀찮아요. 참기름 같은 건 매일 요리하면서 어느 정도 떨어졌나, 언제쯤 다 쓰나 가늠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다 써간다 싶으면 사장님께 전화나 문자해서, <얼마얼마 만큼 보내주세요> 하고 바로 모바일 뱅킹으로 계좌이체해요. 그러면 바로 다음 날이나 이튿 날 도착하니까, 얼마나 편해요? 나는 집안일 보고 있다가 받기만 하면 되고. 몇 년 전에는 이게 안 돼서 겸사겸사 서울 갈 일 있으면 잔뜩 짜가지고 돌아오거나, 지인을 통해 부탁해야 했어요. 이제는 너무 편해요.”

규제완화로 날개단 전통시장. 푸드코트 등 다양한 시설 노려

규제개선으로 가능해진 인터넷판매와 택배 물류 서비스를 바탕으로 전통시장의 즉석판매제조‧가공업자는 이제 전국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이번 규제개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박태신 이사장은 “전통시장 내에서도 대형 마트의 푸드코트와 같은 시설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영업장에서 가공 제조한 식품을 영업장 밖으로 배달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시장 내에서의 “짧은 거리 배달”을 이용하면 각 영업장을 연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는 “시설이 보완 되면 여러 상점을 엮어 푸드코트를 만들 수 있다”며, 전통시장의 독자적인 브랜드 파워도 기대했다.

작은 규제개선이 이끌어낸 전통시장의 놀라운 변화는 지금 전국으로 무궁무진하게 퍼져가고 있다.

interview

▲ <태양기름집> 유형근 사장

“저희는 기름집 뿐만 아니라 방앗간도 겸하고 있어서, 신선한 참기름, 들기름을 짜는 것 뿐 만이 아니라 고춧가루를 빻거나 마늘을 갈아 드리기도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원료로 직접 만드는 고추와 참기름이 자랑이지요. 고춧가루와 참기름은 신선한 원료가 생명이에요. 소비자 반응도 좋고, 신뢰감을 준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유사장은 “예전엔 규제 때문에 배달은 가까운 거리만 가능했고, 아는 분들에게 전달해 달라는 식이었어요. 판매라기보다는 선물에 가까웠지요. 대형 슈퍼도 배달이 가능한데 기존의 규제는 불합리했어요. 이제는 서울 외에도 단양이나 제천 쪽에도 우체국 택배로 보내요. 전라도도 있고요. 얼마 전에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서 주문이 더 늘었어요. 방송에 나오면 신뢰가 높아지긴 하지만 아무리 믿어도 예전엔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택배를 보낼 수 있게 되었지요.”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이렇게 바뀌었어요!

 

‘즉석판매제조·가공 대상식품 배달’, 이렇게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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