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을 앓고 있는 한 청년의 가볍고 발랄한 글을 매달 수회 연재한다. 그가 소개하는 일상의 소소한 감상을 통해 혈우병을 앓고 있는 우리 이웃의 삶과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 우리와 조금 다른 특별한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아~글쎄.... 엉뚱이가...... 남녀 사람 관계라는 게 참 묘하지?”

떨어지면 못 살 것같이 좋다가도, 싸우면 두 번 다신 안보겠다고 다짐해보고..... 그러다가도 또 보고 싶어지고..... 무한 반복되는 거 같아. 있잖아~ 이게 뭔 말 인가 하면, 한 보름 전쯤 여친 ‘엉뚱이’의 일방적인 배신(?)으로 ‘급꿀꿀’했던 내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아~글쎄 다시 연락이 온 거야. 난 이미 맘속으로 ‘두 번 다시는 보지 않겠어’라고 다짐했는데, 연락이 오니까 다시 또 기어나게 되더라고 내참.

인상을 쓰고 앉아서, 한때 여친(?)이었던 엉뚱이의 고해(종교적 의미. 지은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여 용서받는 일)를 받았지. 자기도 맘에 걸렸던 모양이야.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비니까 또 내 맘이 동하더라고.... 지난번까지는 그냥 아무 일 아닌 듯 은근슬쩍 넘기려하더니만 이제는 제법 솔직해 지더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울먹거리며 두 손 모으고 낮은 톤으로 잘못했다고 하니..... 그렇다고 해서 바로 용서해 준다면 이것도 좀 아닌 듯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어”라고 휙 돌아 설수도 없고... 고민되더라고.

그래서 세 가지 제안을 했어. 조금 간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네가 나의 마음을 무지하게 아프게 했으니 이제는 내 아픈 마음을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위로해 줘야하지 않겠니? 첫 번째 ‘하루에 한번이상 까똑으로 하트를 보내’, 두 번째 ‘그 거지깽깽이를 포함해서 주변에 있는 너의 남자 사람들을 정리해’, 마지막 세 번째 ‘매일매일 반성의 기도를 하고 날 위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 그리고 앞으로 몇 개월간 널 지켜보고 그 때가서 판단하자고.

조금 ‘쪼잔’하긴 하지만(크크~) 이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을 까? 장난 같으면서도 자뭇 진지하게 말을 건 낸 후, ‘플라페’ 한잔을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커피숍을 나왔어. 그리곤 오래간만에 영화도 한편 보고. 엉뚱이는 금방 표정이 밝아지고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으며 이곳저곳에 관심을 갖고 눈길이 쏠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걸었지. 하지만 난 겉으론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생각이 한 웅큼이나 됐다고.

여자사람의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한눈팔면 어느새 ‘심쿵’거리는 사건이 발생되고, 모르는 척하고 있다보면 심장이 쫄깃한 상황에 빠져들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이 사람이 뒤로 걷는지 옆으로 걷는지 알 수 있더라고.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 같아. 맘 같아서는 이제 그만 맘을 탁 놓고 기쁘게 포옹해 주고 싶지만, 맘을 놓는 순간 언제어디서 내 뒤통수에 주먹이 날라들지 모르니 워치콘, 데프콘, 진돗개를 모두 발동 시켜야 하지 않겠니?

매너리즘 때문에 놓쳐 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 ‘혈우병 완치’

엉뚱이를 예의주시하게 된 이유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경각심이 발동한 거잖아? 그냥 모르는 듯 흐르는 듯 지나쳐버리면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끝나는 게 인생인지~ 라고 생각했다면 당장 그 마음을 고쳐먹길.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성인 혈우병환자를 대상으로 ‘혈우병 완치’에 대한 전화조사를 한 결과 놀랍게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희망이 없다’는 답변을 내 놓았다고 하더라고. 물론 그 설문조사는 표본오차 범위나 설문조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질문 당시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그런 부정답변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완치’에 대한 소식을 계속 들리고 있어.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 연구가 된다는 거지.

이제부터 이야기 하려는 건 매우 중요한 거야. 혈우사회에서도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하고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

▲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

지난 10월 4일 연합뉴스를 비롯해 다수의 언론사에서 <'취약 X증후군' 치료 가능성 열었다>라는 등 여러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었지. 기사의 부제목은 “연세대 김동욱 교수 연구팀, 세계 최초로 유전자 교정 성공”이라고 보도됐고, 기사 머리말을 살펴보면

“'취약 X 증후군'(Fragile X Syndrome) 유전자를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김동욱 연세대 의대 연구팀은 취약 X 증후군 환자에게서 세포를 채취해 만든 역분화 줄기세포(유도 만능줄기세포)에서 이 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을 제거하고 유전자를 정상 작동시켰다고 4일 밝혔다.” - 2015.10.04

바로 엊그제 이야기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금년 여름. 정확히 7월 24일 주요언론들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 활용 혈우병 치료 가능성 제시” 등과 같은 직접적인 기사 제목으로 보도를 했었지. 혈우병이 완치된다는 소식을 담고 있었어. “혈우병 환자 줄기세포에서 유전자 교정 후 동물 실험 성공”했다는 보도였고, 나아가 “연구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지에 24일 새벽 1시(한국시간) 온라인에 게재됐다”고 신뢰를 높여줬거든.

▲'혈우병 완치…동물실험 성공했다'는 언론보도

일반인들에게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 그러나 우리 혈우병사회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보도이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야기거든. 이것은 희망고문이 절대 아니야. 남들에게 그냥 맡겨둘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거지. 한국혈우재단이 나서야 하고 한국코헴회가 나서야 하는 중요한 이슈이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방치한다면 그냥 지금처럼 주사나 맞고 날짜 맞춰 예방요법이나 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살면 되겠지.

 

우리 혈우사회가 오랫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 오히려 겁을 내거나 피해가려고 하고. 좋은 것을 손에 쥐어 줘도 그게 좋은 건지 아닌지 관심 조차 갖지 않으려고 하고. 남 일이 아닌데도, 자기 일 인데도. 너무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게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고해’해야라고 성찰해야 하고 깊은 반성을 해야 해. 재단이 못 움직이고 제약사가 안 움직일텐데..... 그러면 2천여명의 혈우병환자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고 누구에게서 희망의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지?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A형 혈우병치료제(유전자재조합) 중에서 가장 빠른 치료 처치가 가능하고 환자의 편리성을 높였다는 ‘진타’라는 치료제가 있지. 그런데 이런 치료제가 한국혈우재단에서 왜 아직까지도 처방이 되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어?

진타는 지난 2013년 7월에 이미 한국혈우재단 산하 ‘의약심의위원회(약심)’를 통과한 치료제잖아? 그런데 2년이 넘도록 한국혈우재단 산하의 전국의원 중 단 한곳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처방된 적이 있는지 살펴봐. 없잖아? 답은 빤하게 나와 있거든. 경쟁 제약사를 미워하거나 재단을 원망할 필요가 없어. 문제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거니까~ 자! 그러면 누가 나서야겠어? 바로 환자들이 나서야 하는 것이고 코헴회가 싸워줘야 하는 것이지. 코헴회가 환자대표회라며? 

“엉아들! 제발 좀 움직여줘요~ 쫌!”

자신들의 치료를 위해 자기주장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생각 일이지. “안 되니까 해도 안 되니까”라고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은 대표기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이러한 움직임을 지켜보니, 앞으로 ‘혈우병의 완치’도 물 건너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무척 아프네.

바로 얼마 후에, 완치방법이 나온다고 하면...... 그때는 한두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방해하거나 장벽이 생길텐데.....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적들이 생길텐데.....? 그러면 지금처럼 “안 되니까 해도 안 되니까”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겠지? 같은 말 되풀이가 되겠지만, 답은 빤하게 나와 있거든.

자기 몫을 찾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그 어떤 귀한 보석을 준다 해도, 결국 자기 몫을 못 찾고 마는 ‘그지깽깽이’가 되고 말겠지. 그래서 참 슬프다는 거지. 엉아들! 제발 좀 움직여줘요~ 쫌!

-돌아온 짱구

※ 돌아온 짱구 소개

저는 혈우병(혈우병A, 중증)을 가진 청년입니다. 혈우 후배와 친구들에게 치료 경험을 소개하여 건강한 혈우사회를 이룩하고자 매주1회 정도 기고하려고 합니다. 서술한 내용은 실제 치료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며 의료적인 부분은 혈우병 전문의사에게 조언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환자별 특성 및 치료방법, 생각 등이 다를 수 있기에 의료자문은 자신의 치료병원에서 전문의와 상의하기를 권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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