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다수 들어와서 당을 망쳐놓았다. 국민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이제는 운동권 경력만으로 정치에 들어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전문성을 가진 능력 있는 각계각층 인사가 충원돼야 한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가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 중 한 대목이다. 그는 그러면서 야당이 다시 중도개혁 노선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도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른바 운동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들이 4. 19 이후 민주화를 외치면서  권력의 지나친 억압에 저항해 온 구석은 물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연과학의 법칙을 빼놓고는, 그리고 특히 사회과학이나 사상-이념과 관련해서는, 시종일관 영원무궁토록 전적으로 옳기만 한 건 없다. 처음엔 청신하고 옳아보이다가도, 어느 듯 세월과 더불어 낡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퇴화해 버리는 게 사회이론과 사회철학의 운명이다. 문제는 그것을 주장하는 당사들은 그런 기복(起伏)을 의식하지 못하기 일쑤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소위 운동권도 유신정권과 신군부가 한창 지나치게 나갔을 무렵 ‘광야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부각됐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 후기로 올수록,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 와서는 그들은 또 하나의 완고하고 치우친 옹고집쟁이이자 기득권 패거리로 굳어버렸다. 이념적으로는 프랑스혁명 때의 진보사상 즉 자유 평등 박애와 그 모태라 할 근대적 계몽사상으로부터 이탈해, 독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극단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저항하는 약자가 아니라 군림하는 기득권자, 독선적 사상검열관, 돈받아 먹고도 백합 꽃 들고 나서는 후흑(厚黑) 세력으로 타락해 버렸다.

왜 이렇게 됐는가? 강력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 역시 “미운 자를 닮는다”는 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증오심, 밀교(密敎)적 신앙, 메시아 의식,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 선민(選民)의식, 도덕적 우월의식에 빠져버린 탓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학문적 연마와 구도(求道)자적 성찰을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무식하고 인문교양 없고 삐뚤어지고 꼬이고 난폭하고 무례한 ’불통(不通)‘ 집단이 돼버린 것이다.

오늘의 야당을 망치고 있는 장본인들은 바로 그들 패거리다. 그들은 처음엔 전통야당 안으로 기어들어가 한 동안 피난민 신세로 있다가 차츰 차츰 당내 상층부로 올라가 금배지를 나누어받더니 어느 날 아침 자기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던 전통야당을 타고 앉아 그걸 본격 좌파정당으로 만들어 갔다. 그들은 이윽고 정권까지 잡아 이 나라 각계각층에 자기네 대못을 깊숙이 박아 놓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한 동안 메뚜기 한 철을 누리고 즐겼다. 온 동네, 온 학교, 온 문화계, 온 흥행 계, 온 인터넷 계, 온 담론 계가 그들 입김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역사교육을 그들이 장악해 어린 애들 영혼을 훔쳐가고, 전 세계인들이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구멍 탁, 뇌 송송’이 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중학교 여학생 등 30만 명의 중우(衆愚)와 폭민(暴民)이 도심을 점령했었다. 그러나 이젠 민심이 바뀌고 있다. 천안함, 연평도를 겪어오면서 국민들이 이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못써, 못써, 쟤들은 못써” 하며...

지금 야당 안에서 민심과 여론을 거슬러가며 “이 기득권 죽어도 못 놓는다”며 버티고 있는 저들의 거동은 결국 그들의 몰락의 징후인 것이다. 민심은 오래 걸리지만 반드시 제대로 된 판정을 내리곤 한다. 한상진 교수 말 맞다나, 그들은 야당을 망치고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들을 망치고 있다.

류근일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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