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철 전 문화일보 기자/토론토 한국일보 기자·정치평론가

[김희철 칼럼] 지난 2013년 당시 스웨덴 재무장관이었던 안데르스 보리(Anders Borg)는  언론 인터뷰에서 무(無)파업 노사관계비결을 묻자 “지난 1년 반 동안 노사정이 350번 만났습니다”고 답변했다. 보리 장관의 이 말은 파업으로 인한 경제손실 제로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노사관계를 웅변한다.  한국의 노사정 관계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노총이 지난 8월 말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선언한 지 4개월만에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창구는 열리게 되었다.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한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청년고용 절벽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 도출이다. 바로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초가 노사정 대타협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사정이 대타협을 위해 밝혀 온 저간의 입장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양보와 타협과는 ‘너무 먼 당신’들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은 “나를 따르라”는 청와대와 내년 총선의 유불리만을 따지는 여야의 목소리만 난무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 문제를 국정의 명운을 걸다시피 이슈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전의 시작인 대통령 담화 후 근 한 달 가까이 지나고 있지만 야당과 노동계 설득을 위한 어떤 접촉이나 조치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말만 앞설 뿐이다. 노동시장 개혁의 ‘전가의 보도’인 양 임금피크제만 강조하고 있다. 또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임금피크제, 노동시장 유연화 등 주로 기업 측 입장을 반영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여당은 “노동개혁 없이는 경제회생도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되풀이하면서 노동계와 야권에 경제실패 책임론을 전가하려는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다. 야권은 얼마 전부터 전국 곳곳에 ‘아버지 봉급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 ‘청년 일자리도 돌려막기 하십니까’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런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문구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갈등에 불을 질러 내년 총선에서 표 확보에 이용하겠다는 의도만 드러낼 뿐이다.  

대기업들은 권력 입맛에 맞춰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대부분 어정쩡한 ‘2년 계획’에 그치며, 일자리 숫자도 ‘속 빈 강정’일 뿐이다. 또 대기업들은 청년과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의 근본 원인이 경직된 노동시장이라는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 ‘반타협적’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노조의 ‘밥그룻’지키기도 요지부동이다. 전체 근로자의 10.2%(2012년 기준)에 불과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조가 노사정 위원회의 노측 대변인인한 정규직 대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문제 해결은 요원할 듯 보인다. 한노총은 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 문제의 근인이 정규직 대기업 근로자의 65.5%, 54.4%에 불과한 임금 격차와 불안정한 신분에 있음에도 ‘임금공유제’라는 시혜적 방편만을 내세우고 있다.

노사정 한마음으로 성공한 스웨덴 볼보, 신뢰구축이 원동력

한국 경제가 사실상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나눌 파이가 커지지 않으면서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걱정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청년 취업과 비정규직 문제도 결국 분배문제다. 임금피크제가 효과는 크지 않지만 정년 연장 여파를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착되어야 할 제도다. 그 다음 단계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노동시장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한 노동개혁의 돌파구는 결국 노사정의 신뢰 구축과 이를 통한 대화와 타협이다.  스웨덴 자동차 회사인 볼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무려 2,900여명의 근로자들을 해고해야 했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 해고 근로자들을 재교육과 전직 알선을 통해 1년 만에 2,635명을 전직시켰다. 볼보사는 경영환경이 개선되며 2년 만에 1,556명을 우선 복직시켰다. 노사정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해고근로자를 복직시켰다. 

OECD보고서는 국민 10명 중 7명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한국사회를 저신뢰(低信賴) 사회로 규정했다. 기득권층의 ‘갑질’, ‘새치기’, ‘기득권 지키기’가 근절되지 않는 한 신뢰사회 구축은 요원하다. 일 년 반 동안 노사정이 350회 만나고, 정부와 지자체가 해고 근로자의 전직에 앞장서고, 기업은 일시해고(layoff)된 근로자를 우선적으로 복직시키는 스웨덴에서 우리 노동개혁을 길을 본다. 

김희철 전 문화일보 기자/토론토 한국일보 기자, 정치평론가·SEE 컨설팅 대표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