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2012년 MBC 언론노조가 170일간 끝장 파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사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는 의식 때문이었다. 좋게 말해 주인의식이고 정확히 말하면 소유의식이다. 어차피 임기가 정해진 사장은 잠깐 거쳐 가는 객일 뿐이고 정년퇴직까지 수십년 MBC에 몸담고 일할 직원들이 방송사의 진짜 주인이라는 생각이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 자체는 비판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MBC는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도를 넘어 소유의식으로 변질됐고, 노조가 사장 위에 군림해왔던 곳으로 그로 인해 중립적이어야 할 공영방송 MBC는 편향적이고 편파적인 언론사로 기울었다. 혹자들은 소위 좌파정권 10년간 MBC가 해왔던 짓들이 지금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노조의 기도 많이 죽었다면서 마치 MBC가 달라진 것처럼 여기는데 심각한 착각이다. 지금의 MBC는 정권이 바뀌어 사장과 경영진 얼굴이 달라지게 되면 그대로 노무현 정권 시절의 MBC의 행태를 되풀이하게 돼 있다.

안타깝고 한편으론 한심스러운 일이지만 우파정권 8년 동안 우파들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MBC 관리감독기구 방송문화진흥회에 들어간 이사란 사람들이 한 것이란 게 대개 MBC 경영진과 어울려 다니면서 친목이나 다지고 힘으로 좌편향 프로그램에 딴죽을 거는 정도의 일이었다. MBC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조사, 연구하고 MBC가 제 위치를 찾도록 방문진 이사다운 일을 한 이사들은 감히 단언컨대 아무도 없었다. 방문진 이사들이 방송사 적폐해소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적당히, 정권의 눈에 밟히지만 않을 정도로만 보여주고 편안히 지내다 갈 생각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년이란 시간을 허투루 보낸 책임은 1차적으로 무대책, 무언론관으로 방관한 지난 이명박 정권과 현 정부에 있지만,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MBC 문제를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아예 없었다면 모르지만 우파시민사회에서도, 또 비록 소수이지만 용기 있는 언론학자들의 목소리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MBC 현재에 안주하는 방문진과 경영진이 만드는 어두운 미래

방문진 이사 그들은 그런 목소리를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MBC 경영진들도 굳이 노조가 들고 일어설 일들은 하지 않는다. 대신 내부적으로 미운놈 한직으로 보내고 징계나 때리면서 보복한다는 소리나 듣고 있는 것이다. 언론노조원 뿐 아니라 일반직원들의 원성까지 사는 그런 경직된 분위기는 강성노조만 잡는 게 아니라 MBC 전체의 경쟁력까지 갉아먹고 있다. 언론노조에게는 보복심만 심어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낮에는 경영진으로 호통치고 밤에는 노조에 가서 아부하며 적금 들듯 하는 양반까지 있다니 지금 일부 경영진의 처세에는 그저 감탄사만 절로 나온다. 다음 대선 결과에 따라 MBC에 어떤 피바람이 불지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 목숨은 부지해보겠다는 것 아닌가. 2012년 파업 때 노조가 온갖 패악질을 동원해 거친 싸움을 걸어올 때 용감하고 배짱 있게 맞서던 모습은 어디가고 현실에 안주하고 몸 사리는 경영진의 모습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하다.

MBC가 현재에 안주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현실은 제대로 된 리더십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리더십을 MBC 경영진이 발휘할 수 있도록 방문진이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알다시피 방문진은 그 역할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어떨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김광동 이사는 전임 사장에게 그렇게 단체협약을 뜯어고치라고 이야기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럼 안광한 사장은 듣고 있나. 그리고 그 일이 사장 혼자 하겠다고 될 수 있는 일인가. 노조가 결사적으로 나올 단협 같은 문제는 사장뿐 아니라 MBC 관리감독 기구인 방문진이 그 심각성을 공론화시키고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다. 공영방송 타이틀을 달고 있는 MBC 단협 문제 책임은 사장 한명에 있는 게 아니라 방문진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을 사장에게 몽땅 떠넘기며 욕하는 방문진 이사의 그런 행태는 온당한가. 비겁함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필자가 이진숙 대전 MBC 사장과 같은 이가 그리운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MBC에는 개혁적이고 도전적인 용감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부당한 공격에는 맞서는 용기,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리더십이야말로 2012년에나 지금에나 MBC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으로 MBC 경영과 보도 결과에도 책임을 질줄 아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에겐 이진숙 사장이 느닷없이 지역사 MBC 사장으로 좌천된 사건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왜 방문진은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김광동 이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설친다는 소문이 도는 깜도 안 되는 모 본부장이 다음 사장을 노린다는 소문을 들을 때면 더욱 그렇다. MBC는 지금 예능과 드라마만 있을 뿐 시사보도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기자정신이 살아있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언론사 MBC로서는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기자정신이란 언론노조가 말하는 보수우파 세력을 패대기치는 정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반보수 반새누리가 무슨 세상의 정의이고 기자정신인 줄 착각하는 언론노조 따위들이 진짜를 알 리가 없다.

언론노조는 이진숙 사장에게 진짜 기자정신이 무엇인지 한참 배워야 한다. 이 사장이 작년 워싱턴 특파원 시절 함께 했던 후배들로부터 받은 감사패에는 이런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당신은 후배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기자였습니다. 행동으로 ‘기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문하게 만든 기자였습니다. 이른 새벽 14번가의 프레스 빌딩에서, 백악관에서, 국무부에서, 또 헤리티지와 브루킹스에서 당신은 그 존재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뉴스가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꼿꼿한 눈빛으로 현장을 지키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짧았지만 그래서 더 강렬했을지 모를 당신의 두 번째 워싱턴 특파원 시절을 우리 모두는 오래도록 아름답게 떠올릴 것입니다.” 후배들이 존경심을 표하는 이진숙 사장의 이런 기자정신만큼은 좌파든 우파든 기자라면 배워야 한다. 그리고 기자정신이 사라져가는 MBC가 지켜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진숙 사장을 새삼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MBC에는 개혁정신도, 살아있는 기자정신도 보기 어렵다. 현실에 안주해 안락함이나 즐기는 방문진과 경영진이 정신차려야 한다.

미디어그룹‘내일’ 공동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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