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철 전 문화일보 기자/토론토 한국일보 기자·정치평론가

[김희철 칼럼] 여야가 논란이 되어왔던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은 정하지 않은 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에 일임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번 여야 합의는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의원 정수는 현행대로 유지했지만 선거구 획정의 핵심사안인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 결정은 획정위에 떠넘겼다. 결국 여야는 또다시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국회제출 마감시한인 오는 10월 13일까지 ‘시간끌기’를 해보려는 저의를  드러낸 구태(舊態)를 반복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부터 예견됐다. 선거제도 논의가 정치권의 자발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허용되는 선거구별 인구편차 비율 3대1은 지나친 투표가치의 불평등이라며 2대 1로 낮추도록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으로 전국 246개 선거구 중에서 최소한 62곳에서 선거구 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중 수도권과 중부권이 조정에 따른 확대 몫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영남과 호남은 몇 석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선거구획정과 관련, 여야는 총선 유․불리와 조정 대상 선거구 의원들의 생존 투쟁에만 온통 관심을 쏟을 것이란 우려가 있어왔다. 새누리당의 오픈프라이머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각 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선거 전략일 뿐이다. 결국 선거구 획정의 핵심사안인 선거구 조정이 비례 대표 확대냐 지역구 확대냐를 둘러싸고 여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자는 현행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거대 보수 지역정당체제를 공고화시키고 군소 진보정당 표가치의 불평등을 심각하게 초래한다고 지적하면서 비례대표제 확대를 주장한다. 실제 지난 2008년 총선에서 군소정당은 8.5%의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1.7%의 의석을, 2012년 총선에선 11.4% 득표율에 3.7%의 의석만 차지했다. 이들은 지역주의 완화와 사표를 줄이고 표 가치의 불평등 축소를 위해 비례대표 확대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파공천·돈공천·자질미달 논란 비례대표제 정치불신 부추겨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비례대표 의원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과연 비례대표 의원 확대 주장에 공감할 유권자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비례대표는 당초 각 직능단체의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만든 제도였으나 실제로는 당대표의 권한 강화와 계파 공천, 돈 공천 등의 구실밖에 하지 못해 국민의 불신만을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비례대표 의원들 역시 비례대표제도가 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비례 의원들은 “처음 1~2년은 인턴사원처럼 국회에 적응만 하다 끝난다. 당에서 주는 당직 따라 정신없이 뛰다보면 어느새 다음 총선이다. 부랴부랴 지역구를 찾아 나서다 보면 전문성 발휘는 허울뿐이다”고 실토하고 있다. 

비례 대표 의원들의 자질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야당인 새정련의 사례를 살펴보자.  21명의 비례대표 의원 중 의사․군․경제학자 출신 3명과 배려대상자 2명을 뺀 16명은 경력이 전무한 이들은 물론 대부분 학생운동권 및 노동운동 경력의 범친노 그룹 출신들뿐이다. 이들은 일천한 경력 뿐 아니라 종북논란에 막말까지 인성과 품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 뿐 아니라, 강경투쟁만 말할 뿐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종북세력의 국회진출 ‘숙주 노릇’을 하면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의원 선출을 둘러싼 추악한 이전투구는 비례대표제의 존재 이유마저 상실하게 만든다. 자질과 품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국회의원 한 번에 만족하지 않고 지역구 의원 도전을 통해 계속 정치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정치자영업자’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실제 새정연 비례대표 의원 21명 중 상당수는 벌써부터 지역구를 찍어놓고 ‘기반다지기’에 골몰하고 있다. 오죽하면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해 ‘생계형’, ‘보은 차원’, ‘논공행상 차원’, ‘계파할당 몫’, ‘종북세력의 국회진입 등용문’, ‘정치자영업자’ 등등의 딱지까지 붙었을까.  

결국 선거구 획정과 관련 대대적인 의석 증가가 여론 때문에 힘들다면, 아예 비례대표 의석수를 칼질하는 방법이 차선이 될 것이다. 실제 이 방법은 6공화국 출범 이래 꾸준히 지속되어 오고 있다. 6공화국 첫 총선인 13대 총선(1988년) 당시 전국구 의석은 75석이었으나 그 다음 14대 총선에서 62석으로 줄이고, 15~16대 총선에서 46석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후 17대 총선서 비례대표 투표가 도입되면서 56석으로 반등했으나 18대 총선에서 다시 54석으로 축소, 19대까지 유지되고 있다.

여야는 수도권의 의석수 확대는 반영한 채, 영호남 지역의 의석 축소를 최대한 억제하려고 할 것이다. 결국 현행 300명 의석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줄여버리고 그만큼의 의석을 지역구로 돌리면 그만인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음 총선에 출마할 지역구를 기웃거리지 않으며, 자기 분야와 나랏일에 성과를 낼 인물을 배출할 수 없는 현재의 비례대표 의원 선출 시스템에선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대한민국 정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김희철 전 문화일보 기자/토론토 한국일보 기자, 정치평론가·SEE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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