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물러났다. 친박·신박 온갖 ‘박계’가 붙은 의원들이 그렇게 물러나라 해도 “물러날 이유를 모르겠다”더니 “국민여러분께 사죄드린다”며 사퇴했다.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물러난다면서 국민에게 사과한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박수로 원내대표를 쫓아내다니 여기가 북한이냐’는 비아냥까지 받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청와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사과까지 대신하고 물러난 꼴이다. 혹자들은 유 의원이 자기고집으로 당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난하지만 정확한 얘기가 아니다. 당을 어렵게 만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만 돌릴 순 없다. 이 사달을 만든 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고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책임 역시 크다. 유승민 사태 원인이라는 국회법 개정안 협상 잘못에 원내대표 뿐 아니라 두 사람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런데 원내대표 한 사람 쫓아내자고 희한한 ‘사퇴권고안’을 만들어 못 볼 광경까지 연출하니 유승민 사퇴에 반대한다는 50% 가까이 되는 국민은 그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겠나.

유승민 사태에서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원칙도 없고 지조도 없는 비겁한 정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증명해 보였다. 유승민 퇴출 명분이 됐던 국회법 개정안에 자신들이 찬성표를 던졌으면서 뒤늦게 청와대 진노에 화들짝 놀라 돌격대장으로 돌변한 소위 친박이란 사람들의 한심함은 말할 것도 없다. 비박계란 자들은 또 어떤가. 처음엔 바른말을 하는 척 하더니 내년 총선 걱정에 청와대와 당 대표의 눈치나 이리저리 보면서 태도를 바꿨다.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정부의 국정운영 성과가 필수적이고, 그러자면 당·청이 충돌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양보할 가능성은 없으니, 유 원내대표가 이쯤에서 물러나줘야 한다.(유승민 사퇴 반대했던 재선의원)” “충청권의 한 의원은 ‘내년 총선도 결국 박 대통령을 내세워서 치를 수밖에 없다’”- 이게 한겨레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비박들의 모습이고 정체성이다. 친박은 물론이거니와 비박 역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오직 자신들을 위한 계산의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대체 자기정치를 하고 있는 게 유승민인가 그를 쫓아낸 새누리당의 그 잘난 친박, 비박인가.

유승민 퇴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김무성 대표의 고민, 그럼에도

그동안 필자는 야당 문재인 대표의 아마추어리즘에 비해 안정감을 보여준 김 대표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봤다. 하지만 이번 유승민 퇴출 정국에서 김 대표의 리더십은 실망스러웠다. 국회법 개정안 협상책임은 유승민에게만 있나. 유승민의 그러한 내용의 협상을 추인한 건 김 대표였다. 그 협상이 유승민을 퇴출시킬 정도로 잘못됐다면 총 지휘감독인 김 대표 역시 최소한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유승민이 독자적으로 협상권한을 남용했다면 그것 역시 김 대표의 책임이다. 원내대표가 제 맘대로 협상할 정도로 관리하지 못했다면 당의 모든 권한을 가진 당 대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니 문제가 있다. 원내대표의 능력과 독립성을 믿고 존중하더라도 애초 협상이 제 방향으로 가도록 했어야 했다. 물론 국회법 개정안 협상에서 소극적이었던 청와대와의 소통문제로 겪은 어려움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당 대표라면 국회법 개정안 위헌성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여론은 알고 반영해 협상을 진행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식으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퇴출시킨 것은 새누리당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을 리모콘으로 조정하려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얻었을 뿐 아니라 김무성 대표도 당 대표로서 강하고 독자적인 리더십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따지고 보면 유승민도 김무성 대표 본인이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김무성 체제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기 사람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명분도 부족하고 원칙도 없이 쫓아내어 사태를 매듭짓는데만 급급한 모습으로 보여 실망스럽다. 김 대표가 유승민 사태를 정리한 방식은 불가피성을 이해하더라도 과연 이 정도로까지 해야 했는지, 진정 당과 대통령을 위한 길인지는 의심스럽다. 상하이 개헌 발언 등 김 대표는 먼저 실수하고 그 다음 대통령에 사과하는 식의 형태를 반복한 경험이 있다. 유승민 사태도 그런 맥락이다. 그런 모습이 과연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리더로서 국민이 기대하는 소신과 지조를 갖춘 모습인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껍데기만 남은 김무성 체제, 재정비 나서라

무책임한 발언과 오판을 반복한 것은 신뢰를 깨는 일이다. 김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찾고 5·18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진정성을 국민이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통합의 진정성이 아니라 본인 지지율을 노린 아슬아슬한 줄타기라는 의심을 제거해야 한다. 분명한 소신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고 이리저리 재는 듯한 계산과 뜨듯 미지근한 행보로 대선행보 관리나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건 옳지도 못하고 김 대표 본인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사태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자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끝까지 안고 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자기 사람의 이야기를 가려듣고 판단하는 것과 자기 사람을 끝까지 안고 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김 대표는 청와대로부터 유승민 사퇴 압박을 받고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다가 마지막 깔끔하지 못한 방식으로 유승민을 내쳤다. 이번 일이 김 대표에게 장기적으로 득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어찌됐든 새누리당이 유승민 정국에서 이제 빠져나왔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무성 대표나 많은 상처를 입었다. 승자없는 게임에 모두가 무모하게 달려들었고 남은 상처 역시 치유가 만만치가 않다. 특히 김 대표는 당 수습이라는 큰 과제가 남았다. 유승민 사퇴로 김 대표도 깊은 내상을 입은 만큼 본인과 새누리당이 입은 상처를 어떻게 회복할지 또 다른 리더십과 능력으로 증명해내야 한다. 이미 세간에는 유승민 다음엔 김무성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유승민을 쫓아내는 미봉책으로 마무리한 현재의 새누리당 한계와 무기력으로는 내년 총선 결과는 너무나 훤하다. 새누리당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는 김 대표 하기에 달렸다. 권력과의 관계나 현실적 한계도 분명하지만 선택 또한 김 대표 몫이다. 새누리당이 죽도 밥도 아닌 상태로 가는 건 최악의 수다. 김무성 체제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면 늦지 않게 당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김 대표도 퇴진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

미디어그룹내일 공동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