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지난 2일 난장판 최고위원회의 원인 제공자였던 김태호 최고위원을 일부에서 “새누리당의 정청래 아니냐”고 했다지만 완전히 틀린 비유다. 돌출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게 아니냐는 뜻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두 사람은 극과극의 전혀 다른 타입의 정치인이다. 가끔 오발탄을 쏘긴 하지만 정청래 의원은 그래도 시종일관 적(여권)을 향해 막말대포를 쏘는 일관성을 가진 ‘소신있는’ 정치인이다. 반면 김태호 의원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정치인이다. 돌출행동 뿐 아니라 돌출소신(?)도 자랑한다. 작년 4월 재보선 승리하자 김무성 대표를 등에 업고 카메라 앞에서 환히 웃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재보선 후 두 달 반쯤 지난 뒤 전당대회가 끝나곤 “새누리당은 청와대 출장소”이라는 오명을 떨쳐내야 한다고 누구보다 앞장서 침 튀어가며 강조했던 그다. 불과 1년 뒤 국민이 지켜보는 공개회의에선 반대로 원내대표더러 청와대 어명을 왜 빨리 받들지 않느냐고 깽판을 치는 게 김태호다. 생각과 소신에서 자유로운 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정치인인가. 

김태호 최고위원의 그날 깽판은 친박 후계자를 노린 계획적 거사이건, 아니면 튀어보려는 단순 퍼포먼스이건 간에 주제파악을 한참 못한 공갈자해쇼나 다름없었다. 아니, 새누리당 주인이 김태호인가. 본인이 뭐라고 당의 의원들이 지지해 뽑은 원내대표를 나가라 마라 하나. 친박들은 김태호처럼 입이 없고 할 말이 없어 말을 못하고 있는 줄 아나. “당·청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원내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당일 의원총회에선 왜 당당하게 나서서 유승민 사퇴를 주장하지 않았나. 비공개에선 말을 못하고 공개회의에선 말문이 터지는 희한한 버릇이라도 있다는 건가. 김태호 최고위원이 원하는 대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한다 치자. 유승민이 사퇴한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건가. 원내대표 경선 다시하면 친박이 잡을 수 있나. 유승민만 아니면, 다른 비박이면 청와대와의 껄끄러운 관계는 싹 해소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위기의 본질은 유승민이 아니다

유승민 사퇴가 해결방법이 아닌걸 모두가 아는데도 기어코 유승민을 쫓아낸다면 그 순간 박근혜 대통령은 세상 누구보다 속좁고 비열한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을 그런 이미지의 권력자로 만드는 건 새누리당 전체를 몰살시키는 자해행위다. 아무리 생각과 소신에서 자유롭다지만 대통령과 당을 그런 위기로 몰아넣는 건 최고위원씩이나 되는 사람이 할 일인가. 지금 새누리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을 까먹고 있는 건 유승민과 비박이 아니라 럭비공처럼 튀기만 하는 김태호나 친박 좌장이라며 눈치나 보는 서청원과 같은 이들이다. 도대체 김영삼계 서청원 최고위원이 언제부터 친박인사란 말인가. 김영삼, 이회창, 박근혜 등 숱한 권력자에게 붙었던 인물이 바로 서청원이다. 김태호는 또 어떤가. 작년 전당대회에선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가 갑자기 돌변해 ‘국회가 개헌논의로 대통령에게 염장을 뿌렸다’며 개헌논의를 비판하고 느닷없이 최고위원직을 던졌다. 제정신 가진 이라면 대체 누가 이 모습을 이해할 수 있나.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는 원칙주의와 맞지 않는 김태호, 서청원과 같이 생존과 자기정치를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는 소위 ‘친박’과 ‘신박’이 되려는 이들 때문이지 유승민에게 있지 않다. 유승민 사태는 본질적으로 유승민의 거취 문제가 아니다. 지금 새누리당의 대표가 박 대통령인가 김무성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한 것을 시사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민주당의 주인은 김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구태정치의 핵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구태를 따라 당의 주인이 되려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결국 실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어땠나. 그 누구도 당 주인이 이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박근혜 대표가 당의 주인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고 핵심 공약이었던 한반도대운하도 반대했던 게 그런 박근혜 대표였다. 그것이 당이 청와대의 거수기가 아님을 국민에 각인시켰다.

대통령 위기로 몰아넣는 돌격대장들에게 대통령이 경고장 날려야 한다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다 해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기정치를 한다는 비판도 틀린 얘기다. 박 대통령은 그럼 전 정권 시절 내내 자기정치만 했다는 얘긴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건 현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허구임이 드러나지 않았나.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과 유 원내대표가 말로 하는 것 뭐가 다르다는 건가. 당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게다가 증세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고 한 건 유 원내대표뿐만이 아니다. 김무성 대표도 “국민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유 원내대표 다음 김 대표도 쫓아내겠다는 건가. 박 대통령이 말하는 원칙이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박 대통령이 말하는 자기정치가 이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유승민 원내대표의 ‘청와대 얼라들’ 발언이 이 사달의 근본원인이라고도 필자는 믿지 않는다. 그런 얘기는 정말로 박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위에서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로 당과 대통령을 망신시킨 돌격대장 김태호 최고위원이나 소위 친박이라는 자들의 유승민 사퇴 공세를 비판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당을 위해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짓들을 대체 왜들 하고 있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한다고 이번 사태가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유 원내대표가 김태호 같은 이들과 친박 극성에 못 이겨 사퇴한다면 당도 희망이 없고 대통령도 국민에게 미움만 더 살 뿐이다. 새누리당의 주인이 누구냐, 대표가 누구냐는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한 이 시점에서 권력의 흐름을 거슬러 박 대통령이 억지로 새누리당에 주인도장을 찍으려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본인을 위태롭게 하는 진짜 배신의 정치를 누가 하고 있는지 심호흡하고 눈을 크게 떠서 그들에게 호통을 쳐야 한다. 소위 친박을 자처하고 신박이 되고자 한다면서 대통령을 더욱 위기로 모는 김태호와 서청원 같은 이들에게 레이저 눈빛보다 더한 경고장을 날려야 한다.

 

미디어그룹내일 공동대표 폴리뷰 대표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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