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군에서 신발이 날개 되는 이유.
 
필자가 북한에 살 당시 동네에는 북한군 여단 윤전기재 수리소가 있었다. 소장은 대위, 수리소에는 30명의 군인들이 여단의 고장 난 윤전 기재들을 가져다 수리해주고 있었다.
 
그 윤전기재 수리소에서 군복무를 하는 군인들은 그래도 팔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유는 민간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그들은 고된 훈련이나 배고픔에 시달리는 고생은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술도 배우면서 차 부속 같은 것을 훔쳐 팔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의 유리한 환경이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신발은 항상 꿰진 것을 신고 다니거나, 심지어 농민들이 신는 지하족(地下足)이나 민간인들의 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했다. 그들은 아침마다 수리소 마당에 집합하여 인원점검을 한 후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며 마당을 한 바퀴 돌곤 했는데 그들의 씩씩한 노래 소리는 병영의 담장 넘어 동네까지 울려 퍼졌다.
 
어느 날 필자는 여단 윤전기재 수리소 소장과(그의 처남은 필자의 친구였다)술상에 마주앉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술을 마시며 한담을 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인민군대는 굶어도 씩씩하다. 사흘을 굶겨놓아도 ‘차렷’하고 구령 치면 차렷 한다. 우리 애들(수리소 군인들)도 씩씩하다. 한쪽 신발은 농민들의 지하족을 신고 한쪽 신발은 낡은 군화를 신고도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나만은 잘한다. 절룩거리면서도 ‘보라 우리를 보라 우리는 무적의 장군님군대’ ”
 
그 날 필자는 그 말을 들으며 한참동안 웃었다. 물론 소장도 실없이 웃으며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며칠 후 필자는 누이네 집에 놀러왔다가 돌아가는 친구(수리소 소장의 처남)를 바래다 줬는데 그의 봇짐에 새 군대신발이 아홉 켤레나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친구는 아홉 켤레의 신발을 보며 놀라워하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지금 군대신발 하나를 시장에서 팔면 우리 부부가 한 주일을 먹고살 수 있다”
 
 
2. 산불이 나던 날.
 
90년대 이후 북한에서는 산불이 특별히 많이 났다. 특히 소토지 농사가 시작되는 3월 말 부터는 도처에서 산불이 나 하늘에 연기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산불이 나기를 기다렸다. 이유는 산불이 나면 그곳에 소토 지(地)를 일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두 사람의 실수로 산불이 나면 그 다음 날에는 그 지역에 소토 지를 일구려고 달려온 사람들이 하얗게 덮이곤 했다. 실수로 산불을 놓고 감옥에 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 속에서 주민들은 남몰래 들키지 않고 산불을 놓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수군거렸다.
 
그 아이디어라는 것이 마른 소똥에 불을 달아서 그것을 끈에 매달아 나무에 걸어놓으면 그 불붙는 소똥이 정확히 하루가 지난 후에 끈이 타서 낙엽위에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산불이 나고. 또 누구의 소행인지도 모르고. 당시 간부가 아닌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토지 농사는 유일한 재산 이었고 생명이었다. 그래서 아마 90년대 이후 산불이 특별히 많이 나고 북한의 산은 모두가 벌거숭이로 되었다고 봐야 할 것.
 
당시 필자가 살고 있던 곳에서도 산불이 많이 났는데, 어느 날 읍에서 한 15리 떨어진 산속에 산불이 나고 그것이 이틀 동안 하늘로 검은 연기를 뿜어대자 군(郡)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군당 책임비서는 군안의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가동을 멈추고 노동자들을 산불 끄기에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당시는 전기사정과 식량사정으로 거의 모든 공장들이 가동을 멈춘 상태. 필자가 다니던 공장에도 여라 문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 나와 할 일이 없어 빈둥거렸는데 모든 직원들을 산불 끄기에 동원하라는 상급당의 지시를 받은 지배인은 필자에게 사람들을 몇 명 데리고 산불 끄기에 가라고 지시했다. 자기는 급한 일이 있다면서.
 
필자는 싫은 대로 네 명을 데리고 불이 번지는 산으로 갔는데. 불이 무섭게 타 번지는 산으로 간 우리는 너무도 놀랐다. 군당책임비서의 지시로 읍내 공장기업소들이 가동을 중단하고 산불 끄기에 동원되었다는데 불이 무섭게 타 번지는 산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어이없이 한참동안 웃다가 두 손을 오그려 입 나팔을 만들고 불붙는 숲을 향해 소리쳤다.
 
“거 누구 없소?!” “여러분 지금 산이 불붙고 있습니다.” 이렇게 킥킥 웃으며 소리를 질러대다가 우리는 돌아왔다. 그 때 필자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강 건너 불은 강 건너에 있기에 끄지 못하지만 지금 세월의 산불은 제족속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돌아가는 권력과 정권의 취약성 때문에 생기는 산 건너의 불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날 저녁에 들은 이야기였다. 누군가 필자에게 지배인이 산불 끄기에 안간 이유는 자기 집의 모종돼지를 쌍 붙이기 위해서였다고 이야기해준 것이었다. 지배인은 산불 끄기에 동원하라는 상급당의 지시를 받고 그곳에는 필자를 보낸 후 그 시간에 자기 집의 모종돼지와 이웃집의 수퇘지와 쌍 붙이기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이해했다. 지배인도 돼지치기로 생계를 유지해가는 처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지배인은 필자와 한담을 하던 중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거 옆집 아들놈은 바람기가 넘치는데 그 집의 숫돼지는 왜 그렇게 맥을 못추는지 몰라"
 

김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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