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19대 총선 불출마’로 배수의 진을 치며 7.4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로 나섰다.

 

당내에선 ‘자기희생’이라는 의견과 차기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정치적 쇼’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왔지만, 어찌됐든 당 개혁에 불을 지피고 있다.

 

나아가선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년 4월에 있을 19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의 물갈이 폭이 주목되는 이유다.

 

한 고위당직자는 21일 기자와 만나 “19대 총선에서 공천 칼바람이 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에선 “내년에는 총선 뒤 곧바로 대선이 있기 때문에 물갈이 폭이 그리 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당직자도 “지난 18대 때보다도 초선의원의 비율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선을 안정적으로 치르기 위해선 조직이 안정되고, 연륜 있는 다선 의원들의 경험과 기획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총선은 4년에 한 번, 대선은 5년에 한 번 치른다. 이 때문에 총선과 대선을 한 해에 같이 치르는 경우는 20년에 한 번 꼴로 돌아온다. 직전의 경우는 1992년이다.

 

14대 총선은 소선거구제로 회귀한 13대 이후 지난 18대까지 신인의 등장이 가장 적었던 해로 기록되고 있다.

 

정치신인, 이른바 초선의원의 비율을 살펴보면 가장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초선의원의 비율은 1988년 13대 56.5%로 절반 이상이었으나, 1992년 14대에 와서는 39.8%로 대폭 줄어들었다.

 

1996년 15대 때는 45.8%, 2000년 16대 40.7%였다. 그러다가 탄핵정국 속에 총선을 치른 2004년 17대 총선에서 62.9%로 크게 증가했고, 가장 최근에 치른 18대엔 44.5%로 나타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역대 총선 중 대선이 함께 있던 1992년에 물갈이율이 가장 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총선 결과는 어땠을까?

 

1992년 총선에 앞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1990년 YS의 통일민주당, JP의 신민주공화당과 3답 합당을 이뤄 218석의 거대 여당이 된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의 친이 친박 싸움과 마찬가지로 당시엔 민정계와 민주계 사이에서 계파다툼이 치열했고 공천문제도 복잡했다. 결국 218석의 거대여당은 14대 총선에서 패배해 149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당 현역 의원이 줄줄이 낙마한데 비해 무소속과 야당인 통일국민당은 사실상 승리한 결과였다.

 

여당만 놓고 보면 본래 가졌던 의석의 68.3%만을 건졌다. 그럼에도 대선에서는 여당이 승리했다. 이를 내년 선거에 단순대입하면 19대 총선에서 170석인 한나라당은 116석을 얻어, 대선에 승리하더라도 여소야대가 불가피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한 정치컨설팅업체 대표는 “집권여당에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어 총선 전망이 어두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대선주자는 여당이 독보적이라는 점이 1992년과 닮은 꼴”이라며 “다만 지금의 상황이 과거보다 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뉴스파인더 김의중 기자 zerg@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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