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사이트에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이야기를 올렸다. 하루 만에 조회 수가 1만을 넘어섰다. 깜짝 놀랐다. 한국인들은 로널드 레이건을 그토록 좋아할까 생각하니 또 한 번 놀랐다. 이유가 있었다. 레이건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당을 바꿔 대통령이 된 후 '미국인 모두가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나라 미국’을 만들었고, '세계인 모두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세계’를 만든 것이다.
 
김형곤(2007, 『로널드 레이건 가장 미국적인 대통령』, 살림)은 이렇게 썼다. “레이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존경한 민주당 뉴딜주의자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20년 이상 루스벨트를 선전하고 다녔으며, 루스벨트가 4선이 되는 데 일조를 했다. 그는 1948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트루먼을 지지했고, 1950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선거에서 닉슨의 반대편에 있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자신을 '대책 없는 골수 자유주의자’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화배우조합 회장과 제네럴 일렉트릭사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보수주의자로 변해갔다.” 레이건은 진보를 지향하는 민주당에서 보수를 지향하는 공화당으로 돌아선 것이다.
 
레이건은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민주당의 진보주의는 '대책 없는’ 것으로 보고, 미국을 미국답게 만든 것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 믿고 공화당의 보수주의로 돌아섰다. 미국은 이념이 정당의 색깔을 내는 나라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보수’를 중시하는 보수당과 '진보’를 중시하는 노동당이 서로가 이념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과거에서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는 보수’와 '미래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진보’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가는 국민이 선택한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은 일찌감치 양당 정치가 뿌리를 내렸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이념 아닌 패거리가 정당의 뿌리가 되어 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오면서 이념 아닌 패거리로 정당이 만들어져 왔다. 지금도 신문은 날마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친노계, 친이계, 친박계 등으로 정치가들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야기의 한 복판에는 으레 패거리의 주군(主君)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치가들은 행여 패거리에서 이탈하면 국회의원 공천권이라도 놓칠세라 주군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입으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민생, 민생’ 하면서도 민생에는 사실상 관심이 없다.
 
지난 10월 29일자로 경제부총리 취임 100일을 맞은 최경환 부총리가 내부통신망을 통해 기획재정부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언론에 소개되었다. 최 부총리는 민생 법안을 비롯해 세법 개정안, 예산안, 기업의 투자와 같은 연료가 경제에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하지만 우리 입법 여건은 법안 통과가 마치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듯 어렵다”고 하소연했다는 보도다. 패거리 정치가 가져온 결과다. 그래서 최경환 부총리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면 17대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이나 그 패거리들은, 아니 여야 후보들의 정당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을 단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없다. 여야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외쳐대다가 '증세 없는 복지’ 구호만 되뇌지 않았는가. 결국 박근혜 정부는 첫 예산을 33조 원의 부채로 메꿔야 했고, 급기야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경제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지 않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했던 '70-70 공약’ 가운데 '중산층 70% 달성’은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고 보니 그럴 수밖에!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혈세를 퍼부으며 '70% 고용률 달성’에 매달리고 있는가? 현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률 70%’ 달성은 '꿈’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2005년 슈뢰더 정부에서 65.5%이던 고용률을 2012년에 72.8%로 7년 동안에 무려 7.3%포인트나 끌어올렸다. 해마다 1.04%포인트씩 올린 셈이다. 한국은 고용률이 2002년에 63.3%였는데 2012년에 64.2%로 10년 동안에 겨우 0.9%포인트 올랐다. 이처럼 거북이걸음으로 증가해온 고용률을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의 64.2%에서 2017년에 70%로 올리겠다고 전력투구해 오고 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어렵다. 앙겔라 메르켈은 노동시장을 과감하게 개혁하여 고용률을 7년 동안에 7.3%포인트 올렸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면서 어떻게 5년 동안에 고용률을 5.5%포인트 정도나 올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려면 한국은 해마다 독일보다 더 높은 1.1%포인트 정도씩 올려야 한다. 10년 동안에 겨우 0.9%포인트 오른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률 70% 달성은 과연 가능할까? 어렵다. 그래서 '고용률 70%’ 달성을 접고, 그 에너지로 '경제 살리기’에 올인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국민은 괴롭다.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대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를 호령해온 삼성이 수익 면에서, 애플과의 경쟁에서 흔들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대내적으로 노조의 파워에 넘어지고, 대외적으로 경쟁에 밀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은 중국과 인도의 거센 추격으로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지방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팽개치고 있다. 기업들은 온갖 규제에 묶여 금고에 돈이 쌓여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크건 작건 기업들은 불황으로 앓고 있다. 눈망울이 반짝이는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풀이 죽어 있다. 서민들은 매매가의 70%를 넘어선 전세에 주름살이 늘고 있다.
 
'제2의 세 모녀 막을 맞춤형 복지 법안'은 9개월째 낮잠을 자고 있다. 정치권은 민생 구호를 외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과연 예산 심의가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다.
 
정치가들은 이제 패거리에서 이념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한국에서 '이념’ 하면 지금도 머리를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념’ 하면 '진보’, '진보’ 하면 '좌파’라는 말로 오인되는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 정부가 '진보 정권’을 자처했고, 그 후 '진보’ 곁에 '보수’가 자연스레 자리 잡고 짝을 이루어 오고 있다. 필자는 이제 한국도 미국과 영국처럼 정당이 패거리에서 벗어나 '이념화’되어야만 민생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정당이 이념화되면 '민생’을 위해 정치가들은 여야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리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치는 이제 그만 막을 내려야 한다. 한국에는 로널드 레이건이 없는가? 
 
박동운(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dupark@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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