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형 뉴스파인더 주필

▶지난 20여년 대모산 다니면서 얻은 다람쥐 호칭을 대모산보다 몇배 넓은 수리산에서는 이사온 지 3개월만에 갖게 됐다. 슬기봉·태을봉·관모봉·수암봉 등 모든 산봉우리 답사하고 수 십km의 둘레길·임도(林道)길 곳곳을 산책했다. 이정표있는 산길을 차례로 둘러본 후 샛길까지 물어물어 찾아내며 안산, 반월, 대야미, 산본, 안양 전철역에도 이르렀다. 이젠 등산객 누가 물어봐도 확실하게 안내할 수 있는 수리산 다람쥐가 된 것이다.

▶수리산에 정을 붙인 다람쥐는 대모산에서의 ‘하늘소풍길 단상‘을 똑같이 이어갔다. ’나이듦과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명상,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랑, 만족과 환희를 느끼며 흡족해 했다. 어느 종교인보다 '맑은 마음과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나름의 기도시간을 가졌다. 대모산이건 수리산이건, 절이든 기도원이든, 풍요하든 빈한하든 내 마음의 중심이 중요하며 그런 마음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겨났다. 수리산 곳곳의 다양한 묘지들을 지나치며 떠올린 단상에서도 뿌듯한 발견을 한듯 만족했다. 

 

▶수리산 수리봉을 넘어 수암봉으로 올라가는 산길에 돌무덤이 있다. 국군전사지역이라는 네모 표시판과 함께 밤, 사과를 얹져 놓았다. 삭막한 산골짝서 부상을 입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죽어갔을 처절한 삶의 흔적은 오간데 없고 호젓한 가을 숲길의 평화로움만이 남아 있었다. 밤과 사과를 올려 놓은 등산객들의 정성 역시 아름답게 보였다. 

이외에 수리산 기슭 곳곳에는 명문대가의 선산, 정승들의 묘지를 비롯해 일반사람들의 묘지들이 많다. 비석이나 석상을 세워놓은 잘 가꾸어진 묘지를 보면 그 후손들의 풍요로운 생활을 읽게 된다. 등산객 발길에 훼손될까봐 쓰러진 나무로 경계선을 얼추 막아놓은 묘지를 보면 형편이 어려워진 후손의 안쓰러운 정성이 보이고 폐묘된 무덤에선 세파에 시달리고 사는 후손들이 떠올랐다. 후손들의 번영을 좌우하는 풍수란 것이 묘지 선택이 아니라 묘지 관리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묘지 속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든, 그 후손들의 생활이 어떻든 수리산 속에 있는 묘지들은 잘 가꾸어진대로, 방치한대로 자연 속에 동화되어 편안하게 존재했다. 무덤 속의 인물 역시 모두 평화롭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수리산 묘지들을 보며 정철의 ‘권주가’을 읊으며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삶과 죽음을 초연해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가족에 대한 마음씀씀이도 너그러워진 듯 했다. 산속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보내오는 손녀의 사진과 동영상을 흘낏흘낏 보는 즐거움이 컸다. 그래서 숲 산책길은 더 아름답고 풍성했을 것이고 그에 맞춰 가족사랑도 커지는 것 같았다. 산보다 교회를 찾는 아내가 좋아할 것 같은 둘레길 코스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완만한 숲길을 걸어 호숫가로 내려오는 코스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지만 그안에서 세상을 생각하고 우주와 신도 볼 수 있다"
대모산에서부터 내가 줄곧 주장해왔던 말을 입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내 지론은 아내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우물안 개구리에게는 우물이 세상과 우주로 보일 뿐이라는 식이다. 아닌게아니라 아내는 일박이일로 다녀온 청풍명월의 도시 제천의 ES팬션, 정방사, 배론성지 등의 풍광을 수리산에 비할 수 없이 좋아했다. 수리산과 대모산서도 세상과 우주를 읽는듯 한데 30여년 함께 살아온 마누라는 하나님만큼 읽기가 어려웠다.  

 

▶ 돈 안들고 남에게 피해 안입히며 심신건강을 돕는 수리산 산책은 술담배 즐기며 세속에 묻혀사는 나에게 필요한 신앙이었던 것이다. 내가 확신을 갖고 은근히 강요하는 숲길 산책을 아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내가 아내의 신앙을 나에게 전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수리산서 세상을 본다는 다람쥐의 치기는 역시 우물을 못 벗어나는 개구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한 생각을 하니 다음부터는 우물을 벗어나 아내가 좋아하는 곳도 함께 둘러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곳서 새로운 세상과 우주, 그리고 아내를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래도 아내가 좋아할 수리산 갈치호수길로 인도하며 멋진 수리산 정취를 함께 만끽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내 확신과 취향만 내세울게 아니라 아내의 신앙과 취향 역시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종교와 이념, 생활이 모두 그러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세상 삶에서 더욱 소중한 것은 사랑과 배려와 연민 아니겠는가. 

신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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