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연합의 시작
 
지난달 독일의 자유주의 싱크탱크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에서 주최하는 한국-유럽연합 FTA 연수에 참가했다. 5박 6일간 진행된 프로그램은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셸에서 이루어졌고 유럽연합 의원, 관료, 싱크탱크 연구원 등 자유주의 성향의 현지 인력들과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유럽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1951년 유럽의 6개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1, 2차에 걸친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는 전후의 평화를 지속시킬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고 그 방법론으로서 산업 통합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뇌리에 스친 건 칸트의 '영구평화론’이었다. '영구평화론’이란 국가들 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시장이 커지고 상호 의존성이 커지면 세계평화가 유지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자유주의의 평화관이기도 한데 2차 세계대전 후 자유무역이 확대됨에 따라 세계는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유럽연합의 사례는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후 유럽이 평화를 위해 산업 통합을 선택한 것은 매우 흥미롭고 눈여겨 볼 점이라 생각한다.
 
 
단일시장
 
유럽연합의 가장 큰 특징은 '단일시장’이다. 단일시장이라 하면 각국이 정치, 외교, 국방은 독립적으로 수행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내에서 자유롭게 교류하는 것이다.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상품의 이동에 통제를 철폐했고 거주이동의 자유를 위해 출입국의 관리 조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만들어 효율성을 더한 것이 유럽연합 시스템이다.
 
즉 특정 국가에서 취득한 학위, 직업, 자격증 등을 다른 국가에서도 그대로 인정  받을 수 있으며 능력만 있다면 국적과 관계없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높은 세율에 불만이 있는 국민은 세율이 낮은 국가로 손쉽게 이민을 갈 수 있다. 이는 국적도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이며 단일 시장 내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어디서든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2년 프랑스 올랑드 정권의 부자증세에 불만을 갖고 벨기에로 귀화신청을 했던 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 이야기는 국적이 상품화 되어 가고 있음을 뒷받침해주는 사례이다. 폴란드인이자 유럽연합 국제문제 전문가 Malgorzata Krusiewicz씨는 철의 장벽 세대인 부모님 세대와 유럽연합 세대인 자신의 세대를 비교하며 유럽 단일시장이 부모세대에 비해 얼마나 자유롭고 많은 기회를 주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유럽연합의 단일시장이 완성되기 전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각국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단일시장’이라는 문구는 심플하지만 그 안에 각국의 헌법이 모두 다르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통합된 유럽연합의 법률체계로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 300개가 넘는 법안과 각기 다른 표준을 통합하는 일은 유럽 국가들의 법률조정에 관한 지속적 노력들 Directive(회원국 조정지침), Regulation(산업적인 지침), Mutal Recognition(판례법-케이슬로) 그리고 비관세 장벽을 상호인정이라는 대타협으로 해결해낸 과정을 보면 수십 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화려함의 이면에
 
이렇게 대단한 유럽의 '단일시장’이지만 화려함 이면에 그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극심한 불경기과 향후 수 십 년 저성장에 대한 걱정, 서비스업에 편중된 산업구조, IT분야의 취약한 경쟁력, 서비스업의 혁신이 고용저하로 이어지는 추세 등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유럽연합 전체의 한해 특허등록 수가 일본의 80~90% 밖에 되지 않는 점이다.
 
최근에는 유럽의회에서 유럽 단일시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닌 의원들이 다수를 점했다고 한다. 이는 아직 진화중인 유럽 단일시장에는 매우 부정적인 소식이다.

또 한국과 자유무역협정 후 유럽이 가장 자신하던 자동차 분야에서 독일 자동차 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이 개방으로 이득을 본 것은 독일뿐이라며 개방에 반대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 일본, 인도, 아세안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준비하는 유럽연합에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고민의 결과물
 
그럼에도 이번 연수를 통해 느낀 점은 유럽연합, 유럽의 단일시장은 유럽인들의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평소에 유럽에 대한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이 도취되어 사는 대륙, 복지병 등의 이미지다. 하지만 브뤼쉘에서 공부하며 유럽인들도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스템을 보완하고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학위, 직업, 무역 등 광범위하게 단일 시장으로 묶어서 국적마저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자유주의를 공부하며 꿈 꿔왔던 이상적인 시스템과 일부 닮아있었다.
 
전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산업부터 통합한 유럽을 보며 동북아시아에도 하루 빨리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단일시장을 꿈꿔보았지만 국내 상황만 봐도 정치적 이슈들로 인해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도 저 멀리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유럽연합에 대한 근시안적이고 편향된 시선에서 벗어나 그들의 고민과 도전에 대해 포괄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김성우|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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