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모처럼 대한민국이 대동단결하고 있다. 정치 뿐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이슈마다 편을 가르고 진영으로 나뉘어 싸워대기 바쁜 대한민국이 법안 하나로 인해 똘똘 뭉치고 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때문이다. 그렇게나 어렵던 국민통합을 이 법안이 단박에 이뤄낸 셈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헷갈릴 정도다. 지난 5월 국회에서 여야의 절대적인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이 10월 1일 시행되자마자 소비자들이 들끓고 있다. 물론 언론도 흥분하고 있다. 단통법으로 인해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느니, 모든 국민이 ‘호갱님’이 됐다느니 하면서 그럴듯한 근거를 붙여다 매일같이 이 법안을 공격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단통법으로 인해 과거처럼 불법 보조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면서 휴대폰 단말기 가격이 오르니 당장에 누구하나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이득은커녕 당장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구매를 포기하고 그러니 판매자는 매출이 줄고 단말기 제조사 역시 타격을 받는 등 단통법 시행 초기 부정적 효과만 드러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법안은 당장에라도 폐지해야할 악법일까? 국회에서 이 법안에 찬성하고 통과시켰던 213명의 국회의원들은 “단통법이 소비자를 위한 법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고 고백하고 다시 폐기처분에 나서야 할까? 단통법을 통과시켜주고도 지금에 와서 다시 단통법이 삼성봐주기법이라며 분리공시제만 물고 늘어지는 야당의 태도는 옳은 것일까? 단통법은 옳았지만 분리공시제가 안 돼서 지금의 부작용이 나온 걸까?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 분리공시제를 마치 단통법의 전부인 양 몰아가는 태도는 정직하지 못하다. 삼성이 이동통신사 등에 장려금을 얼마나 지급하는지 따위는 삼성의 경쟁사들에게만 중요할 뿐, 보조금 상한제에 묶여 있는 소비자에게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어차피 소비자는 삼성이 주든 SK가 주든 그들이 얼마를 나눠 배분하든 일정한 보조금을 받게 된다는 건 똑같다. 현재 나타나는 단통법의 부작용이 마치 정부가 분리공시제를 단통법에서 제외시켜 일어났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정확한 분석이 아니란 얘기다. 본질이 아닌데도 야당과 참여연대 등이 분리공시제를 목표로 물고 늘어지는 건 소비자 이익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이 따로 있다는 속셈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

오해와 과장으로 단통법을 비난하는 사람들

단통법에 대한 비난은 우파진영, 시장주의자들도 좌파에 못지않다. 어떤 이는 누구나 동일한 조건으로 스마트폰을 사야한다는 멍청한 생각으로 정부가 규제하는 건 사회주의 발상이나 다름없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시장주의자들의 원칙에서 보면 그 주장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한 번 따져보자. 그런 논리라면 시장의 가격 정찰제, 정가 가격제 역시 누구나 동일한 조건으로 사야한다는 멍청한 생각이며 사회주의 발상에 불과한 걸까? 시간이 있고 정보에 발 빠른 나는 모 브랜드 15만원짜리 운동화 한 켤레를 3만원에 주고 사고, 시간 없고 정보에 어두운 너는 같은 운동화를 제값 다 주고 사는 게 정당한 걸까? 이게 시장주의이고 경쟁원칙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남보다 한 발 빠른 정보 판매 마감 시간이 다가오는 생선을 떨이로 판매한다면 이를 차별 대우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비유로 차별적 보조금을 옹호한다. 하지만 비유가 대단히 잘못됐다.

시장에서 판매 마감 시간 몇 시간 전부터 하는 할인 판매나 ‘떨이’ 판매와 휴대폰 보조금 경쟁은 같은 선상에 놓고 비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장의 할인 판매는 소비자 입장에서나 판매자, 공급자 입장에서 얼마든지 예측이 가능하다. 또 판매 마감 직전 생선을 할인 판매하는 데 대해 양측이 서로 납득할 수 있다. 생선을 오래두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상하기 전에 빨리 팔면 판매자는 이득이고 소비자 역시 싼 값에 구매할 수 있으니 이득이다. 생선을 싼값에 사기 위해 할인 판매 시간대를 이용하는 걸 두고 소비자를 차별한다거나 차별받는다고 억울해하지 않는다. 생선을 떨이 판매하는 데 대해 양측이 모두 납득할 수 있고 예측이 가능하며 그 과정이 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대폰 보조금 차별은 과연 그런가? 차별적 보조금이 생선의 할인 판매처럼 예측가능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졌나? 전혀 아니다.

누구는 운이 좋아 특정 시기, 특정 매장에서 80만원 단말기를 구매하면서 보조금을 90만원씩이나 받는 ‘보조금 폭탄’ 행운을 누리고 누구는 어딘가에서 100만원에 가까운 휴대폰을 출고가 그대로 주고 36개월 할부에 고가의 요금제까지 얹어 사는 불운을 누리는 게 과연 정상적인가? 이런 현상이 과연 시장경제 ‘경쟁 원칙’이 제대로 발현된 모습일까? 운이 좋은 사람들은 싼값에 휴대폰을 사고 덤으로 용돈까지 생기니 좋을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누리는 그 행운에 대한 비용은 그 외의 소비자들이 전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70만원에 샀으니 보조금 혜택을 받아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착각에서 빨리 깨길 바란다. 그 보조금도 공짜가 아니다.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일찌감치 내가 지불한 통신비용에서 다 뽑아간 돈이다. 근본적으로 보조금이란 소비자에 이익이 아니라 결국 전체 소비자가 짊어져야 할 비용일 뿐이다. 보조금은 공짜가 아니라는 소비자의 각성이야말로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시장 왜곡하는 ‘보조금 경쟁’ 블랙홀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다

휴대폰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자 이동통신사들이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한 것 가운데 하나가 번호 이동이다. 하지만 번호 이동을 부추기는 이 경쟁은 얼마나 더 많은 보조금을 줄 수 있느냐로 성패가 갈렸고, 소비자 역시 보조금을 더 받는 데만 몰입하게 했다. 보조금이란 게 결국 기만적인 조삼모사에 불과한데도 마치 보조금을 더 받아내야 이득을 본 것처럼 소비자들을 착각에 빠지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동통신사들과 단말기 제조사들의 먹거리 고민에서 나온 보조금은 과다 경쟁을 불러일으켰고, 휴대폰 시장은 갈수록 필요 이상 과열되면서 휴대폰 단말기 교체 시기는 갈수록 더 빠르게 요금은 더 비싸게 만들었다. 결국 보조금 경쟁이란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블랙홀과 같은 것이다. 보조금 경쟁에만 허덕이는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에게 소비자를 위한 기술개발이나 서비스 개선을 바라는 게 오히려 더 무리인지도 모를 지경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시장을 교란할 지경에 이른 보조금 문제에 모두가 공통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이고, 그래서 나온 게 바로 단통법이다. 그런 절박감에서 나온 법인데도 시행 채 열흘도 되기 전부터 ‘전국민의 호갱화’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대개 모든 법안이 그렇지만 시행 초부터 바로 효과를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두가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통의 문제의식에서 오랫동안 고민 끝에 나온 법을 놓고 당장 폐기하라고 난리를 치는 건 스스로들 머리가 새머리밖에 안 된다고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민의 체질이 아무리 ‘빨리빨리’라도 법안의 효과까지 마음대로 빨리빨리 나타나지 않는다. 단통법은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안이다. 모두가 인내하고 기다리는 미덕이 필요하다. 소비자는 당장 휴대폰 값이 올랐다고 법안 폐지 운동을 할 게 아니라 그동안 값비싼 휴대폰을 보조금만 믿고 금방금방 갈아치우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휴대폰을 값싸게 살 수 있는지 불필요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만큼 그동안 어떤 부분에서 통신 과소비가 있었는지 체크하면서 현명한 소비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별다른 기능 차이도 없는데 디자인만 바꿔 계속 만들어내고 비싼 값에 팔던 제조사들도 이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정이 한참 멀었는데도 금방 고장이 잘 나는 허술한 단말기로는 시장에서 경쟁력 우위를 보일 수 없다. 당연히 기술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현재 웃고 있는 이동통신사 역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시장 변화에 움직이지 않고 비싼 요금제를 고집해서는 결국 소비자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분명 현재의 단통법이 완벽한 법안은 아니다. 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정부와 입법 기관이 추가적으로 계속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단통법은 현재 이동통신시장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정치권과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의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행 초기에 보이는 단편적 부작용 때문에 모두가 단통법을 마치 악법인양 몰아가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 좌파진영 일각의 주장처럼 단통법의 부작용을 전적으로 ‘분리공시제’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우파진영 일각의 주장처럼 단통법이 반시장적인 멍청한 사회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것도 합리적인 분석이 아니다. 단통법은 엉망진창인 경쟁의 기본룰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재는 모두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인내의 끝이 달콤하도록 개선과 보완책 마련에 더 신경써야 한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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