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이 27일 북한의 핵개발 및 3대세습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그간 관련 문제에 대해 침묵해온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2011년 정기 당대회를 열고 ‘새로운 진보신당 건설을 위한 실천계획’을 발표한 진보신당은 이같은 내용의 동의안을 대의원 345명 중 찬성 211명으로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가 마련했던 원안은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였지만, 현장에서 일부 대의원이 위와 같은 수정안을 제출함으로서 진보신당은 이례적으로 종북주의 이미지를 벗게 되었다. 한 대의원은 이 수정안과 관련해 진행된 찬반토론에서 “진보정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북핵개발과 3대 세습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진보정당이 지향하는 사회가 북한식 사회주의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3대세습 ‘침묵 혹은 외면’ 민노당 “도덕성이 무덤에 들어가”


이로서 ‘진보대통합’의 기치아래 올 6월 안에 달성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진보정당 통합은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한 민노당과 진보신당 사이의 분명한 노선차이가 재확인되어 눈길을 끈다.


PD(민중민주, 평등파)부터 NL(민족해방, 자주파)까지 다양한 계열의 좌파세력을 포괄했던 민노당은 NL 계열 당원들의 당권 장악 및 친북주의 문제 등으로 인해 2008년 심상정·노회찬 의원의 주도로 분열, 연대적 진보를 표방하며 새롭게 창당한 진보신당과 줄곧 북한 문제를 놓고 좌파진영 내에서 의견의 차이를 보여왔다.


작년 북한의 9·28 당대표자회 직후 민노당은 논평을 통해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특히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그같은 언급에 앞서 “북한 후계 구도와 관련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더라도”라고 표현한 점이었다. 이에 대해 좌파매체 경향신문이 전면적으로 비판을 가하고 논쟁이 오가는 등 파장이 커지기 시작하자 이정희 대표는 개인블로그를 통해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 언론 안에도 스며들어온 것이 안타깝다”며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고 밝힘으로서,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얼마든지 판단 가능한 북한의 각종 부당성에 대해서도 ‘체제 평등성 존중’이라는 이념적 기조의 명분하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민노당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한편, 그같은 이정희 대표의 입장표명은 본인이 덧붙인대로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라는 일종의 ‘자존심 지키기’에 기초해있는 점으로 보아, 정의를 지키는 길보다 자기 상품화에 에너지를 쏟아대는 ‘허울 좋은 진보’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조롱을 받았다. 특히 좌파논객 박노자 교수는 “진보의 유일한 무기는 도덕성이고, 도덕성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3대 세습은 사회주의와 무관하고, 근대적 합리성은 능력이 검증된 사람이 통치하는 것인데, 북한은 그것마저 못하는 나라인데도 진보진영이 그에 대한 말도 못한다는 것은 도덕성이 무덤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독자노선 진보신당, ‘명확한 反北’ 필두로 좌파연대 재편시켜야


이번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이른바 ‘통합파’인 조승수 대표 및 노회찬·심상정 前 대표 등이 낸 계획안은 북한 관련 원안과 함께 2012년 총선과 관련한 진보대연합 원안까지 모두 부결되었다. 이에 따라 진보대통합의 꿈은 고사하고 진보신당마저 분열의 조짐이 엿보인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렇게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야권에 연대적 진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주의자들이 늘 어느 선 이상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원인과도 통한다. 바로 현실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그들의 시선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잣대다. 사회적 의제를 발전시켜 현실적 평화를 보다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저마다 자신을 브랜드화하여 밥그릇 지키고 뜨고 싶은지의 본심이 한반도 현 긴장상황에서의 북한 문제에 대한 자세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 독자파 당원들의 이번 친북 거부 선언은 뜻깊은 흐름의 출발이다.


진보신당은 수정동의안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참여 대상과 관련 진보신당이 제시한 가치기준에 동의하는 광범위한 진보세력을 포괄하되, 그 가치기준에 반하는 정치활동을 했던 세력은 조직적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제한하며 “뜻을 같이하는 정당들 간에 신설합당을 통해 새로운 당을 만들고 다양한 세력과 개인들이 이에 참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명시함으로서 엄밀한 사상구분을 통한 독자노선행을 천명했다. 이는 좌우이념과 상관없이 환영할만한 일이다. 누가 봐도 ‘덩치’보단 ‘정체성’이 요구되는 현 좌파세력이 진보신당의 이같은 결정을 기점으로 대북외교를 비롯한 첨예한 사안들에 대해 합리적 정책력으로 반응하게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이 주목된다.


용남군 기자 ygshow@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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