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인더 최원영 기자] “2010~2012년 판매한 90만대 차량의 연비가 과장됐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지난 4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에 실린 현대차그룹의 전면광고 문구다. 더불어 차량소유자들에 대한 보상 계획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를 계산하면 총 1,000억원 정도의 벌금이다.

 

벌금이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해외시장에서 현기차가 쌓아온 이미지를 모조리 잃을 판이라 더 문제다.

 

기름값이 하늘을 찌르며 자동차 연비는 사실상 차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를 속인다는 것은 차를 구매한 이들에게 있어 리콜을 요청할 수 있을만큼 중대한 문제다.

 

투자자들로 부터 외면 받아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으며 미국 자동차 시장을 지키기 위한 오바마의 보호정책이 가동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는 줄 알았던 현대자동차의 이같은 모습에 국내 온라인에서도 일제히 비난여론을 형성했다. 앞으로 후폭풍이 더 무서운 이유다.

 

美, 현대기아차 ‘뻥연비’에 ‘뿔났다’

연비 앞세운 마케팅에 이미지 큰 타격

 

앞서 2일 미국의 환경보호청은 엘란트라, 싼타페, 쏘렌토, 리오 등 2011년형과 2013년형 13종의 현대·기아차 연비가 1~6mpg 과장됐다며 조치를 내렸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연비 과다 표시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고 연비 표시를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차량 구매자들에겐 지난 2년간 보유하는 동안의 연비 오류 차이 금액만큼 직불카드를 지급하고 변제금의 15%를 추가로 보상한다는 계획 등을 내놨다.

 

하지만 미국의 일부 소비자들은 이같은 현기차의 보상안을 전면거부하고 약 8,400억원 규모의 집단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현기차의 보상안에 중고차 값 하락과 불편에 대한 부분은 빠져있어 이를 포함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구매 및 리스계약 취소 소송도 잇따랐다.

 

그동안 연비를 앞세운 마케팅에 주력했던 현대기아차였다. 미국에서 번지는 연비 과장 집단소송으로 브랜드 이미지 타격은 물론 소비자들의 불신까지 사고 있는 상황에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최근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도 “현대기아차의 보상비용이 법적 비용을 제외해도 연간 1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사실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당면한 문제는 선례가 있었다. 지난 2009년 렉서스를 운전하던 미국 경찰관이 브레이크 통제 불능을 외치다 일가족이 몰살한 영상이 뉴스를 장식했다.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결국 도요타는 1위자리에 오른 지 8개월만에 GM에게 그 자리를 도로 내줘야 했다.

 

일본 혼다도 지난 3월 미국 시장에서 시빅 하이브리드차 연비과장으로 인해 총 1억 7,000만달러를 배상한 바 있다.

 

이번 현대차의 발빠른 행보도 과거 도요타가 책임을 회피하며 대처를 늦추다 대규모 리콜사태를 맞은 것을 교훈 삼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미국의 자동차시장 부흥을 위해 미국이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단기 악재로서 그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내놨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국내로 이미 옮겨온 상태다.

 

韓 시민단체 “정작 우리는 보상 계획 없다고?”

국내까지 번진 현대기아차 비난 물결

 

현대·기아차는 국내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 차량의 연비는 국내 법규를 충족하고 있고, 한국 정부 역시 양산차의 연비 수준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는 게 현대기아차의 입장이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소비자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현대·기아차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도 행동에 나섰다.

 

서울YMCA는 지난 6일 현대·기아차 전 차종에 대한 연비와 관련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국내 운전자의 69.4%가 표시연비와 체감연비 간의 괴리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국내시장 판매량의 7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연비 부풀리기는 소비자에게 불신을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9년부터 2012년 11월 현재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자동차 연비 관련 상담 70건, 피해구제 17건이 접수됐다.

 

국내 소비자들도 현대·기아차의 공인연비에 대한 불신이 높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기업에선 ‘운전자의 습관에 의해 좌우된다’는 식의 원론적 답변만이 있을 뿐이다.

 

국내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소비자를 위한 시장이 부럽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시민단체들은 국내에 판매되는 자동차 연비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제시했다. 자동차회사들이 자체 시험한 연비 측정 결과를 신고하는 현행 제도를 폐지해야 하고 공인시험기관으로부터 검사받은 연비 측정 결과를 신고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시민단체들은 현대·기아차의 연비에 대해 공개적인 검증을 실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이하 공단)이 ‘2012년 공인연비 사후관리 결과’를 통해 올해 출시된 현대·기아차의 9개 차종에 대해 연비를 검증한 결과 허용범위 5% 이내로 모두 이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제 누리꾼들은 이런 정부의 발표도 쉽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측정은 제대로 했나? 한통속이구만”, “연비 차이가 이것뿐이 안 난다고? 어째 소비자가 느끼는 연비하고는 너무 차이가 난다”, “자국민 호구 취급하는 기업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얼른 정신차리고 자국민에게 더 좋은 서비스나 마인드를 가져줬으면 한다” 등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현대기아차 ‘불안감’ 커지는 이유

이미지 타격 커… 호재보다 악재 많아

 

19일 기준 현대차 주가는 21만 4,000원이다. 지난 4월 거의 27만원에 육박했던 것에 비하면 6만원 이상 크게 떨어졌다. 또 지난달까지만 해도 25만원대를 형성했던 것에 비하면 4만원 정도 떨어진 셈이다.

 

기아차는 더 심각하다. 지난 5월 8만원대를 훌쩍 넘었던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져 19일 현재 5만 6,80원선까지 내려 앉았다.

 

3분기 높은 영업이익률과 해외기지 증설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주가가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제히 미국 현대기아차의 연비사태를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보상비용은 단발성 주가하락으로 끝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미국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계속되는 징벌적 배상과 잇따르는 소송이 현대기아차의 목줄을 죌 것이다.

 

사실 현대기아차로서는 미국 환경보호청과 맘놓고 소송 싸움을 벌이기도 힘든 상황이다. 전면전으로 갔을 경우 도덕성에 흠이 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득보다 실이 많았을 것이란 예상이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를 한번에 깎아먹었다는 데 있다. 높은 연비를 선전해 왔던 터라 그 타격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고 엔화 약세를 등에 엎은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공세도 거세다. 반면 강세를 보이는 원화는 현대기아차 수출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이번 EPA의 조사 결과는 외국계 모 자동차회사가 현대기아차를 압박하기 위해서 EPA 측에 종용한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또 이번 조치에 따라 국내 소비자들의 불신과 반현대기아차 의식도 배제할 수 없다. 공인연비와 실제 연비 간 괴리 문제가 논란이 돼 온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반발은 계속돼 왔고 과거 지경부가 연비제도 개선을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해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자동차업계 반발로 도입하지 못한 사례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업계 편의만 봐줬고 소비자는 무시했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결국 일부에선 이 시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연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수치’가 아니라 ‘신뢰’라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와 자동차 업계의 현명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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