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4급 디스크 공익판정 의혹은 허무 개그로 끝났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경기고-서울 법대에 사법시험, 하버드대 수료 등 최고 엘리트인 강용석 의원(무소속)이 박 시장 아들 주신씨의 MRI 재촬영 한 방으로 나가떨어진 것도 그렇고, 강 의원 폭로가 근거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의 체중을 공개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의혹을 키운 박 시장도 그렇다.

어찌 보면 강 의원이나 박 시장, 주신씨 모두 병역의무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이 나라 ‘병역특례제도’의 희생자일지 모른다.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정신을 짓밟고 ‘공익’이라는 ‘특례’를 둠으로써 박 시장 아들에게 현역면제라는 혜택이 주어졌고, 그 ‘공익’이라는 의혹의 불랙홀에 강 의원과 언론, 국민들이 빠져 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겪은 것이다. ‘특례’가 뭔가? 바로 ‘특별한 예외’다.

우리나라 병역에는 구멍이 너무 많다. 심신이 미약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스포츠 잘한다고, 해외 콩쿠르에서 입상했다고, IT 기술이 뛰어나다고 병역을 면제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상화됐다. 심지어 1980년대에는 석사장교라는 망국의 제도까지 나왔다. 석사학위 소지자 중 우수한 자를 선발해 6개월간 군사훈련과 전방 체험을 거친 후 소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전역시켜주는 제도다. 당시 군 복무기간이 3년에 육박했다. ‘신의 아들’이 울고 갈 특혜다. 핵을 개발하고 갖가지 미사일로 무장한 채 “서울 불바다”를 외치는 북한 변태정권을 눈앞에 두고도 신성한 병역을 이렇게 농단해온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신성한 병역을 농단해온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야구종목은 ‘동네야구’ 수준이다. 참가국이라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정도고, 야구 강국 일본이 프로선수 대신 사회인야구 선수로 팀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그 동네야구에서 금메달 땄다고, 병역의무가 면제됐다고 입이 찢어진 야구선수들. 그에 반해 동메달로 병역면제를 받지 못해 입이 불쑥 나온 축구 대표선수들의 벌레 씹은 표정. 그렇게 병역을 면제받고 미국으로 돌아가 음주운전에, 경찰관 매수 시도로 나라 망신시킨 추신수. 미 프로야구의 대타자’ 테드 윌리엄즈는 2차대전과 한국전쟁 두 차례 징집돼 전선에 배치되어 4년간 복무한 뒤 복귀해 ‘영원한 4할 타자‘라는 신화를 남겼다. 병역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영구중립국인 스위스는 군대 없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다. 그런데 병역도 징병제고, 징병에 예외가 없다. 불구자도 병역의무를 마쳐야 한다. 병역대신 `방위세’를 내는 것이다. 스위스 국민은 그 누구도 이 제도가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위험이 없는 싱가포르도 `병역특혜’란 말 자체가 없다. 한번 징집통보를 하면 연기도 불가능하다. 18세가 되면 무조건 가야한다.

싱가포르 기준이면 박 시장 아들은 네 차례 징집연기를 꿈도 꿀 수 없고, 한나라당 안상수 전 대표처럼 요리조리 신검과 징집을 회피하다 고령으로 면제받는 일은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군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공무원으로 채용되지 않는다.

심신허약자들에게 병역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비인도적이다. 심신의 핸디캡도 고통스러운데 정상인과 같은 강도의 병역의무를 이행하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 아니다. 그러나 병역특례는 ‘징병제’를 택한 헌법정신에 따라 극히 예외적으로 접근해야 옳다. “병역에 예외는 없다“가 대전제다. 몇 대 독자라고, 평발이라고, 디스크라고, 과체중이라고, 병역을 면제하는 변태는 없어야 한다. 과체중으로 병역이 면제된 대표적인 인물은 신세계 재벌 2세인 정용진 부회장이다. 그는 대학시절 체중 93kg으로 한계체중 91kg을 불과 2kg 오버해 면제받았다. 그런 그가 미국 유학을 훌륭하게 마치고 두 번 결혼에 신세계 부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몇 대 독자와 평발, 디스크 환자도 군에서 할 일이 분명히 있다. 그들이 가진 신체적 핸디캡이 ‘애국심‘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박 시장 아들 주신씨처럼 길 한복판에서 점프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계단을 내려갈 수 있다면 군대에서도 역할이 있을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이야말로 현역이 적격이다. 군에서 강도 높은 훈련으로 체중도 줄이고 건강도 챙겼다면 기업을 더 불같이 일으키지 않을까? ’병역특례‘란 망국적인 단어를 이 나라에서 영원히 없애야 한다.

이스라엘 내각은 특공대 출신들 가득

국방의무가 희화화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위중하다. 이 대통령 본인이 병역을 미필한 처지에 그 주변을 병역기피 의혹으로 점철된 인물들로 채웠다. 국무총리, 국정원장, 감사원장, 집권당 대표가 병역미필자들이었다. 안보와 정보를 책임진 병역미필 국정원장은 지금도 장기 재임 중이다. 남들이 “빡쎄게” 전방에서 고생할 때 골방에 틀어박혀 고시 공부로 출세한 기회주의자들이다. 청와대 벙커에서 열린 천안함 폭침 비상대책회의 참석자 가운데 병역을 마친 사람은 국방장관이 유일했다는 기막힌 사실.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이스라엘 내각이 특공대 출신들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연예인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생이빨을 뽑고, 비보이들이 정신병을 가장하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동생을 사망했다고 신고하고, 운동선수가 고의로 어깨를 탈골시키는 일들이 왜 벌어지는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신의 아들’이 나와서는 결코 안 되겠다. 박원순 시장 아들 ‘디스크 박’도, 강용석 의원도 나와서는 안 된다. 북한군 의무복무기간은 전투병 10년, 기술병 13년이다. 병력규모는 117만 명이다. 이래도 병역특례제도를 그대로 두겠는가?
오윤환 논설위원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