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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구술채록사 박미혜 작가 / 엘빈의 서재 콘텐츠 디렉터.
윤수지 기자  |  park@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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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20  17: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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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문화 콘텐츠 프로덕션 <엘빈의 서재> 박미혜 콘텐츠 디렉터

울긋불긋한 자신의 기억을 자박하게 담아 놓고 한올 한올, 한땀 한땀 문자로 기록하다 보면 아픈 기억도, 슬픈 기억도 그저 상황이었고, 기쁜 기억 또한 그저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시간이 아닌 상황. 살다 보면 상황들이 시간을 이겨 버릴 때가 무척 많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은 뒤로하고 상황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시절을 살았고 한 시대를 살았으며 무엇보다도 시간을 살아 냈다. 상황이 아닌 시간을 살았다는 증거가 바로 기록이다. 문자에 의한 상황의 기록을 통하여 상황은 비로소 시간이 되고, 시간은 드디어 역사가 된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자서전을 출간 준비 중인 어느 여사님의 자료 수집 인터뷰를 위해 그분의 댁을 방문하기 위해 채비하는 박미혜 작가를 따라나섰다.

박미혜 작가, 그녀는 많은 명함을 가지고 있다. 복합문화공간(갤러리&카페)의 경영자이자, 문화기획자이며, 문화 콘텐츠 프로덕션 엘빈의 서재 콘텐츠 디렉터이자, 사회사업가이며, 작가이자 구술채록사이다.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사랑하지만, 유독 구술채록사 박미혜로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구술채록사, 뭔가 낯선 심오함이 가득한 것 같은 직함이지만, 쉽게 풀어 말하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문자로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말이다.

왕이나 대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기록하여 역사로 남기는 사관처럼,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지만, 구술채록사는 특수한 계층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물의 이야기 또한 듣고 기록(Archiving 아카이빙)하여 이를 근거로 객관적인 사실로 역사화 한다는 것에 그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는 낯설고 생소한 직업군이기는 하지만, 외국에서는 민간부문도 ‘기록보관소(archive 아카이브)’가 있다. 이야기 산업의 최강국인 영국에는 기업들은 물론이고 각 마을마다 도서관, 박물관, 기록관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구 단위 마다 도서관과 박물관은 있으나 기록관은 없다.

특히, 영국이 나니아 연대기나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탄탄한 스토리 강국인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영국의 기록관에는 모든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의 구술채록사(Archivist 아키비스트)는 모든 기록을 생산·수집·분류·보관·유지한다. 기록관에는 주민들, 단체들의 기록이 모두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각 마을의 기록관을 다니면서 그 기록들을 살펴보고, 그 중 괜찮은 자료를 발견하면 스토리 구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영국은 이야기 산업의 인프라인 기록문화가 확실히 구축되어 있어서 세계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평한다.

이렇듯 낯설디낯선 구술채록사라는 직업의 중요성이 분명하지만 국내에서는 체계적인 양성 기관도 커리큘럼도 아직은 미비하다. 다만, 국책사업으로 각 지자체마다 발 벗고 나서고 있는 ‘도시재생’이라는 연결고리가 막연한 기관사업에 끼어 조악한 예산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미혜 작가는 처절하리만큼 치열하고 꿋꿋하게 이 일을 약 10년 동안 흔들림 없이 해 오고 있다.

“참, 돈 안 되는 일을 잘도 골라서 한다고 가까운 누군가가 제게 말할 정도였어요.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하지만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안 할 수가 없었어요. 특히, 비교적 관심도가 높고 참여도가 높은 사건 중심의 구술채록이 아닌 생애 중심의 구술채록사는 저 외에는 없어요.” 라는 그녀의 말처럼 대부분의 구술채록사는 사회적으로 관심도가 높은 주제 중심 즉, 시대적 사건이나 이슈에 집중된 구술채록이었지만, 그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삶에 집중된 생애 구술채록을 하면서 아주 평범한 이들의 삶 또한 위대하며 그분들의 삶 또한 기록되어야 하고, 기록하여야 하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그분들의 귀와 입이 되고 있다.

기억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상황의 반사작용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가 상황을 지배하고 그 지배력이 기억을 편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기억을 대중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건을 철저히 객관적인 사실로 추려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구술채록사는 주관적인 감정의 개입을 철저하게 배제하며 기록만 할 뿐 절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의 기록은 기록자 또는 기록을 주관하는 사람과 조직의 정치적인 견해나 노선, 시대적인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양상을 심각하게 띤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모으고 이으면서 게워지는 기록으로 인한 역사의 퍼즐은 오히려 공공기록으로 만들어진 역사보다 훨씬 더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결국 역사라고 불리는 공공의 기록은 승자의 이야기일 뿐 사실에 대한 기록과는 무관 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술채록사, 특히 주제 중심이나 사건 중심의 구술채록이 아닌 개인의 생애 중심의 구술채록의 사회적인 역할과 기능 그리고 필요성은 지극히 중요하고, 지극히 당연함에도 국가나 그 기관들은 그녀와 같은 생애 구술채록사에게 민간기록에 대한 요구를 해태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누구 하나 편이 될 것 같지 않던 구술채록사로서의 지난함에 버겁던 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어느 출판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 회사의 임원으로 기용되면서 본격적인 구술채록 활동에 탄력을 받게 된다.

특히, 제주4.3사건을 구술하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편향성을 띠는 공공의 기록보다 비록 구술의 객관성은 떨어지지만, 기록의 구체성이 보장된 생애 구술채록의 중요성을 더욱더 확신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초고령화로 인해 하드웨어적인 마을의 기능이 소멸 되어 가고 있는 마을들의 이야기와 그 마을 구성원들의 생애 구술을 기록함으로써, 사라지고 없어져 버릴 한 마을을 역사로 남기는 일을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용기로 인해 각 지방자치단체 및 유관기관에서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고, 구술채록사 양성 커리큘럼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결국, 개인의 생애가 역사의 기초가 된다는 그녀의 논리를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되었다.

도시재생사업이든 농,산,어촌 마을 가꾸기 사업이든, 이런 사업들을 할 때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지 않으면 섬세하지도, 세밀하지 않으며 심지어 누락도 심한 공공 기록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모든 기록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돼야 하는 개인의 생애에 대해 채록하고, 그 기록들을 보존하고 보관하고 보유하는 것이 결국은 개인에서 마을의, 마을에서 지역의, 지역에서 국가의 역사가 된다.

기록의 순기능은 기억이다. 만약 문자로 기록하지 않았다면 기억되지 않았고, 과거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문명은 지금처럼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인간의 문화는 지금처럼 진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록의 진정성은 이념이나 신념이 아닌 그저 기록이다. 기록자가 누구인지, 기록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말처럼 개인이 아닌 위인이 없고, 위인이 아닌 개인도 없으니까.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한민국 프로야구계 불멸의 슈퍼스타 고 최동원 투수 어머니의 이름이셨던 분이, 그분의 마음을 그리고 그 생애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감동하는 박미혜 작가를 통해 한평생 훌륭하게 제자들을 키워 내셔서 교육부장관상까지 받은 위대한 여성교육자이자 지금까지도 장애우와 글을 모르는 노인들을 위해 글을 가르치고 계시는 훌륭한 사회봉사자 김정자 여사님이라는 자신만의 이름으로 인터뷰가 끝났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고 아파트 복도를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은 마치 모녀처럼 팔짱을 끼고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삶은 기억이다.’라고 가브리엘 G 마르크스는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라는 책에서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또는 기억하게 하기 위해 어떤 기록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반드시 어떤 기록을 해야만 하는가?

이 화두에 대해 구술채록사 박미혜 작가는 말한다.
“모든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박미혜 작가의 구술채록 및 자서전 출간에 관해서는 문화콘텐츠 프로덕션 엘빈의 서재 www.elvinlibrary.com 로 상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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