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교수는 여론조사로 보면 박근혜와 함께 청와대에 가장 가까이 가있다. 그가 요즘 북한·안보·사회 분야에서 대선주자 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받는다면 그는 제대로 받아야 한다. 반듯한 시각을 지닌 정통파 전문가에게서 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김근식 경남대 교수의 ‘북한수업’은 매우 우려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햇볕정책 이론가이며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평양방문단의 일원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안 교수를 두 차례 만났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범인이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 종결이 이뤄진다. 김 위원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 문제도 매듭지어야 한다.” 그는 안 교수가 동의했다고 언론에 전했다. “안 교수가 정말 동의했나”라고 묻자 그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공소권 없음’ 주장은 역사적·법률적, 그리고 정치·군사적으로 완전히 틀린 것이다. 정말 동의했다면 안 교수는 역사·안보 식견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

천안함은 김정일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국가 테러다. 국가나 조직이 자행한 전쟁·테러·납치는 최고지도자가 죽었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지도자가 국가나 조직의 책임을 고스란히 승계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자살했다고 해서 독일이 책임에서 벗어났는가. 전승국이 뉘른베르크에 설치한 ‘정의의 전당’은 공군사령관 괴링 등 12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독일의 전쟁범죄를 철저히 단죄한 것이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다고 북한이 ‘70년대 일본인 납치’ 책임에서 벗어났는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2년 평양회담에서 김정일에게 엄히 책임을 따졌다. 김정일은 납치를 사과하고 결국 일부를 돌려보냈다. 지금 김정은이 새 지도자가 됐지만 일본은 여전히 북한에 납치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는 2001년 9·11 테러를 저질렀다.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사살됐다. 빈 라덴이 죽었다고 미국이 알카에다를 면책하고 있나.

김정일이 죽었다고 ‘대북 공소권 없음’을 얘기하는 건 개인과 국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기초적인 논리파괴다. 현실적으로도 매우 허술한 발상이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 김정은은 이미 후계자였다. 그런 그가 테러 계획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걸 지금 보장할 수 있나. 그가 관여하지 않았어도 현재 북한 정권의 책임은 여전한데 관여했다면 더 큰 문제 아닌가.

외교·안보·역사에 관해 지도자가 잘못된 시각을 배우면 공동체에 위험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인권변호사 시절 고(故) 이영희 교수의 책을 많이 읽었다. 이 교수는 중국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학자였다. 노 대통령은 중국 방문에서 칭화대 학생이 ‘존경하는 중국 지도자’를 묻자 덩샤오핑과 함께 마오쩌둥을 거명했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이란 광기(狂氣)로 인류문명을 위협했다. 한국인에게는 중공군 참전이라는 악몽을 남겼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존경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비뚤어진 역사·안보관을 배우니 노 대통령은 안보에서 많이 흔들렸다. 북한 핵개발에 유약했으며 한·미 동맹보다는 미·중 등거리 외교를 지지했다. 노무현 집권 시절 강경 친북·반미세력이 평택 미군기지사업단을 공격하고 맥아더 동상을 부수려 했다. 정권은 이를 제대로 막지 않았다.

안철수는 북한 공부에서 원칙과 역사를 고민해야 한다. 남북 경색을 풀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천안함·연평도를 면책하자는 주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북한의 계승적인 책임을 거론해야 대화와 교류도 반듯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승국이 독일에, 일본이 북한에, 미국이 알카에다에 한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해군 46 명과 UDT 의인(義人), 그리고 해병 2인과 민간인 두 명의 영혼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고 있다. 그런 하늘 아래서 ‘공소권 없음’은 정의에 대한 배반이다.<중앙일보 16일자 칼럼>
김진<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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