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상 좋은 인품을 가진 사람은 올바른 사상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인간이 어떤 성품을 갖느냐 하는 것은 주로 그의 감정적 경향과 관련되어 있고, 인간이 어떤 사상을 갖느냐 하는 것은 주로 그의 이성적인 노력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감정적 경향이 잘 조절되어 좋은 인품을 가지는 것과 올바른 이성적 노력의 결과 올바른 사상을 가지는 것은 분리되어 이루어진다.

인품과 사상의 형성이 이처럼 별개의 영역에서 별개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품과 사상이라는 두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분류하게 되면, 모든 사람은 4개의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좋은 인품에 올바른 사상을 가진 인간, 좋은 인품에 잘못된 사상을 가진 인간, 나쁜 인품에 올바른 사상을 가진 인간, 나쁜 인품에 잘못된 사상을 가진 인간 등으로 분류된다.
 
사상 문제에 대한 이해부족이 심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형은 좋은 인품에 잘못된 사상을 가진 인간형과 나쁜 인품에 올바른 사상을 가진 인간형이다. 그러나 역사나 사회현실에서 보면 이런 인간형들은 매우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레닌이나 호지명은 인품은 훌륭했으나 사상은 잘못된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다. 그에 반해 처칠이나 케네디는 인품은 별로 좋지 않았으나 사상은 올바른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다.
 
잘못된 사상을 가진 정치지도자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라도 결국 자기 나라 국민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올바른 사상을 가진 정치지도자는 인품이 나빠도 국민을 불행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정치인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인품보다 올바른 사상이 훨씬 중요하다. 의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양호한 인품이 아니라 올바른 의학 지식인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인간이 올바른 사상을 갖게 되는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고 올바른 사상에 대한 정보에 접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인품이 훌륭하다 하드라도 젊은 시절부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고 잘못된 사상의 정보에만 접하게 되면 잘못된 사상을 가지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는 사회주의라는 잘못된 사상의 정보가 매우 은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전파되었다. 지하에 숨어있던 이런 저런 유의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자기들의 사회주의 사상을 공급하는데 은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60~80년대의 한국 사회상황의 문제점에 분노의 감정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이 인품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사회주의라는 잘못된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 반해 인류역사가 올바른 사상이라고 입증해준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상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파되지 못했다. 우선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세력이 선점해버렸고, 사회주의 사상을 갖지 않은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의 정치세력과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젊은이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전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3공화국 말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집권세력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학교교육에서 실시했다. 이 나라에서는 그만큼 자유민주주의라는 올바른 사상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1960년대 말 이후 대학생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는 사회주의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었고, 자유민주주의화 운동을 한 사람들은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훌륭한 인품을 가지면서도 사회주의라는 잘못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게 되었다. 지난 연말에 사망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근태씨의 사망 이후 이 나라의 언론매체들은 그를 ‘민주화운동의 대부’라고 미화하면서, 그러한 표현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의 훌륭한 인품을 거듭해서 소개했다. 언론매체들은 김근태씨가 가진 잘못된 사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가 당국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것만 언급했다. 필자는 김근태씨가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는 언론매체들의 보도를 믿는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김씨의 인품에 대한 칭송만 하고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언론매체들의 보도가 대중으로 하여금 그의 사상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그를 진짜 ‘자유민주화운동의 대부’로 착각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김근태씨는 훌륭한 인품에 잘못된 사상을 가진 위험한 인물이었다. 나쁜 인품에 잘못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에 반해 좋은 인품에 잘못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 위험성이 매우 높다. 대중이 그의 좋은 인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나머지 그의 잘못된 사상마저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는 좋은 인품에 잘못된 진료를 하는 의사와 나쁜 인품에 잘못된 진료를 하는 의사 중 어느 쪽의 사회적 위험성이 더 클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인품에 잘못된 진료를 하는 의사는 나쁜 인품에 잘못된 진료를 하는 의사들보다 사회적 위험성이 훨씬 크다. 나쁜 인품에 잘못된 진료를 하는 의사에게는 환자들이 잘 찾아가지 않아서 잘못된 진료의 피해를 보는 환자들의 수가 많지 않게 된다. 그에 반해 좋은 인품에 잘못된 진료를 하는 의사에게는 그의 인품에 매료되어 많은 환자들이 찾아가 잘못된 진료를 받게 된다. 그런 환자들은 그 의사의 잘못된 진료로 인해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의사의 훌륭한 인품을 믿는 나머지 자기의 죽음이 의사의 잘못된 진료 때문이 아니라 질병 그 자체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착각하며 죽는다.
<이 글은 코너스 넷에 게재된 글입니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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