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희망자 모집 합니다" 오해 없기 바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지역구 공천 후보자나 비례대표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선출직 국회의원이나 임명직 공직자로 근무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 국가가 이런 광고를 내 겨우 자리를 채운다는 소설의 세계다. 1960년대에 혹독한 현실 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장편 ‘분지(糞地)’를 발표해서 형사 처벌됐던 작가 남정현이 1971년에 발표한 또 다른 세태 풍자 소설인 ‘코리어 기행’은 그런 꿈같은 시대를 그린다.
 
어느 날 동해 어딘가에서 엄청난 원유가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이 세계 제1의 산유국이 된다. 국민들은 당연히 넘치는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된다. 권력의 지배도 사라지고 모든 공직은 지원제다. 그나마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지 않고는 도저히 삶의 재미를 못 느끼는 극소수의 조금‘ 이상한 사람’빼고는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된다.
 
소설은 그것이 발표된 시점인 1970년대 초의 현실을 과거로, 유토피아적 환상의 시대를 현재로 설정한다. 그리고 과거의 참담한 현실을 현재의 그 꿈같은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시켜 묘사한다. 작가는, 말하자면 반어(反語)기법으로 일종의 우화(寓話)를 제시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고발했던 셈이다

그때로부터 40여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은 산유국이 되지도 않았고 소설이 그렸던 환상적 세태가 펼쳐질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하나는, 빈부격차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 대부분은 유사 이래 가장 풍족한 삶을 살고 있고 자유도 과잉을 우려할 정도로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다. 그러니 소설적 상상이 아니더라도 공직 선호가 크게 줄어들법한데 상황은 정반대다. 모든 직업인의 최종 희망직종이 정치인양 되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정치에  달려드는가. 단순하게 풀이하면, 선출직은 투자에 비해 소득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직종’이기 때문이다. 향유하는 권력의 내용이 이행해야할 책임의 규모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특히 그렇다. 총선을 앞둔 때마다 벌어지는 정치판의 격렬한 공천 싸움은 결국 국회의원에게 보장된 특권이 실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초년생이라고 해도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순간 온갖 권력 행사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그만큼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새삼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부질없을 정도다. 국회의원 한 명당 세비가 1억 2,000여 만원이다. 그뿐인가. 국회의원 한번 하고 나면 만 65세 때부터는 월 120만원의 종신연금을 받는다. 국유(國有) 철도와 선박, 항공기는 공짜다. 생계형 직업으로서도 이만한 직종이 달리 없다.
 
면책 특권, 회기 중 불체포 특권 등 그야말로 환상의 권력을 누린다. 회기 중에는 국회 안에서 어떤 발언을 해도 책임을 지지 않고 명백한 폭력 현행범인데도 당장에 입건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의 국기(國基)에 도전하는 발언도 면책되고 공중부양? 해머 동원? 최루탄 발사도 그냥 넘어 간다. 국정의 문제점을 자유롭게 질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법이 규정한 면책특권, 국회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이 헌정 유린의 방편으로 전락한 것이다. 시대적 과제로 제기돼온 정치개혁이 국회의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데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때마침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국회의원의 권한 축소 방안을 내놓고 있긴 하다.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의 포기를 공식 언급했고 종신연금 포기도 가닥을 잡아가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헌법사항이긴 하지만 면책특권 역시 언젠가 어떤 절차를 통해 어느 정도로 축소할 것인가를 공약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세비? 공짜 특혜도 본격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4.11 총선을 석 달 앞둔 지금 전국 245개 지역구에서 1743명이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평균 7.1대1의 경쟁률이다.(지난해 12월 30일 현재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예비후보와 동아일보가 자체 집계한 예상출마자 합계). 정당 공천 획득을 위해 이전투구가 여전히 불가피하다는 신호다. 특권을 향한 사생결단의 경쟁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새삼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을 대폭 축소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정치개혁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조규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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