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27일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과 평검사 인사를 내달 3일 자로 단행했다. 검찰의 중심을 국민 생활과 밀접한 형사·공판부로 옮기기 위해 해당 분야의 일선에서 충실하고 묵묵히 업무를 수행해 온 검사들을 적극적으로 발탁했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실제로 형사부장이나 인권감독관, 고검 검사 중 우수 검사로 뽑힌 이들이 약진했다. 또 서울중앙지검과 부산지검 강력범죄형사부장에 여성 부장검사가 임명되고 법무부 법무실과 대검 공판송무부 과장 자리에도 모두 여성이 보임된 점도 평가할 만하다. 안타깝게도 이런 긍정적인 측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가까운 것으로 꼽히는 검사들은 대거 영전한 반면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검사들은 또다시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좌천된 점이다. 특히 이런 인사가 업무능력 검증 등을 통한 객관적 평가와 상관없이 이뤄지면서 이른바 '코드인사'나 줄 세우기라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전국 최대 검찰청이자 중요 사건이 몰려 있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에는 이성윤 지검장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4차장이 임명됐다. 최근 직제 개편으로 선거·노동 사건 등 공공수사를 지휘하게 될 3차장검사에는 추 장관의 '입' 역할을 해 온 구자현 법무부 대변인이 발탁됐다. 신임 2차장검사와 4차장검사도 이 지검장과 같은 호남 출신으로, 법무연수원이나 대검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한동훈 검사장과 몸싸움까지 벌였던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우수 형사부장'에 뽑혀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한 검사장의 공범 혐의 입증에 실패한 정 부장검사는 독직폭행 의혹으로 서울고검의 감찰과 수사를 받고 있는데 피의자로 입건된 검사를 승진시킨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검찰 안팎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달님'으로 부르며 정치색을 드러내는가 하면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킨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로 옮겨 사실상 영전했다.

윤석열 총장의 핵심 참모 중 한 명인 권순정 대검 대변인은 전주지검 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긴다. 이동재 전 기자의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하는 등 윤 총장과 의견을 같이했던 대검 형사과 과장들도 대부분 전보됐다. 여권 인사 등이 연루 의혹을 받는 주요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도 좌천을 면치 못했다. 현 정권을 겨냥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은 대구지검 형사1부장으로,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을 맡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기소한 서울동부지검 이정섭 형사6부장은 수원지검 형사3부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긴다. 조 전 장관의 수사와 공소 유지를 맡았던 강백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부부장검사도 통영지청으로 밀려났다. 눈치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했던 문 대통령의 1년여 전 발언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해 온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은 대전지검 형사3부장으로 가는데 실제 이동이 이뤄지는 내달 3일 전에 수사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

추미애 장관은 검사장급 인사 직후인 이달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특정 라인·사단 같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특정 학맥이나 줄을 잘 잡아야 출세한다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 인사가 그런 취지와 지향에 과연 부합하는지 곱씹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직 구성원의 업무 태도나 몸가짐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인사는 추 장관의 말처럼 곧 만사(萬事)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는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겼지만, 검찰은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가 위축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길 바란다. 특히 일선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객관적이고 엄정히 처리하는 것만이 국민 신뢰를 얻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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