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난해 12월 31일 진통 끝에 가까스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와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는 등 구태의연한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빈축을 사고 있다.

 

10·26 서울시장 재보선 당시 불어닥친 이른바 ‘안철수 바람’에 대한 ‘학습효과’로 여야 할 것 없이 정당정치의 복원을 외쳤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치가 ‘유아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당초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던 ‘안풍(安風’)이 새해까지 장기간 동안 강세가 유지되는 주된 이유로 이 같은 여야의 무기력한 정치력을 첫 손에 꼽을 정도다.

 

18대 국회는 임기 중 단 한 번도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4년의 임기 동안 두 번을 새해 전날 예산안 처리를 한 첫 번째 국회가 되는 등 각종 불명예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예산안 통과 시간 역시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11시 22분으로 2004년 12월 31일 오후 10시 55분을 깨뜨렸다. 이 과정에서 ‘준예산 편성 준비 굴욕’은 덤이었다.

 

“야당 신경쓰랴, 박근혜 눈치보랴”…무기력한 한나라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눈을 너무 의식해 합의처리라는 대의명분에만 집착하다 집권여당의 무게감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묻지마 식 양보’로 일관한 한나라당은 결국 민주통합당의 본회의 표결 불참으로 ‘뒷통수’만 제대로 맞은 셈이 됐다.

 

또 이른바 ‘박근혜 복지예산’을 대거 증액하면서 새로 출범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지나치게 눈치를 본 것도 문제였다.

 

한나라당은 안보문제와 직결되는 제주해군기지 사업으로 배정된 예산 1327억원 중 1278억원(96%)을 대폭 삭감했고, 4대강 후속 사업인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 예산도 500억원을 감액시키는 데 동의했다. 특히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들과 제주 강정마을 현장까지 쫓아가서 반대했던 사업이다.

 

해외자원·유전 개발 사업도 1700억원을 삭감시켰고,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의 특수활동비도 야당의 주장대로 감액됐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요구를 고분고분 수용하면서 주력한 것은 PK(부산·경남)·TK(대구·경북) 지역에 각각 3493억원, 2550억원의 예산을 증액하는 등 자당의 텃밭 지역의 민원성 예산 확보였다.

 

“야권통합이 뭔지…”, 노조에 휘둘린 민주

 

한나라당이 민주통합당에 휘둘렸다면 민주통합당은 일개 노조에 휘둘렸다. 친노세력이라고볼 수 있는 ‘혁신과통합’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및 일부 시민사회 세력의 합류로 탄생한 민주당이 이들의 입장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2012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의 후, 회의장에 들어가고도 표결에 불참하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도 ‘론스타 국정조사’를 요구한 한국노총을 의식한 탓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동계가 당 지도부에까지 포함돼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당 운영을 위해서 선택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노리고 있는 민주당에게는 70만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거느린 한국노총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금융산업노조위원장 출신으로 한국노총이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당 지도부가 된 김문호 최고위원이 지난달 29일 외환은행·농협 등의 노조원 20여명과 함께 이날 자정 민주당 원내대표실 점거를 시도하는 했던 일은 현재의 민주당의 현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김 최고위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농협 구조개편에 대해 당 지도부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기 위해 점거를 시도했다가 출동한 국회 경위에 의해 국회 밖으로 쫓겨났다.

 

그 결과 민주당은 ‘론스타 청문회를 일단하고 필요시 국조 실시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절충안까지 거부했다.

 

뉴스파인더 김봉철 기자 (bck0702@newsfinder.co.kr)

저작권자 © 뉴스파인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